영등포
영등포/ 조성범
한 때는 붉은 해당화,
거룻배 타던 등판이 널찍하던 사내들
지천이었다는 떠돌던 말들까지
샛강으로 아득하게 멀어지고 난 뒤
덜컹대는 안갯속으로
야윈 웃음 짓는 소녀들이 모여들고
소녀들 따라 붉은 전구 등 빛을 발했었다
암초에 좌초한 사내들이 역전에서 표류했고
뒷골목 좌판에 걸린 커다란 솥 안에 남루한 하루가
펄펄 끊어댈 때
우리는 밥 대신 술을 마셔댔다
어느 이국의 소공녀의 이름이 높게 매달리고 난 뒤로
삐걱거리던 나무 계단들은 허물어지고
기름때 묻은 손가락들 더 이상 펴지지 않게 되었다
꽃들 조차 피어나지 않은 봄이 지나갈 때
모퉁이마다 깨어나지 못할 꿈속에
별들이 내려앉는다
여기는 물을 잃은 포구
꽃을 잃은 달의 뒷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