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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범 Jun 06. 2017

시향

영등포

영등포/ 조성범


한 때는 붉은 해당화,

거룻배 타던 등판이 널찍하던 사내들

지천이었다는 떠돌던 말들까지

샛강으로 아득하게 멀어지고 난 뒤

덜컹대는 안갯속으로

야윈 웃음 짓는 소녀들이 모여들고

소녀들 따라 붉은 전구 등 빛을 발했었다


암초에 좌초한 사내들이 역전에서 표류했고

뒷골목 좌판에 걸린 커다란 솥 안에 남루한 하루가

펄펄 끊어댈 때

우리는 밥 대신 술을 마셔댔다


어느 이국의 소공녀의 이름이 높게 매달리고 난 뒤로

삐걱거리던 나무 계단들은 허물어지고

기름때 묻은 손가락들 더 이상 펴지지 않게 되었다

꽃들 조차 피어나지 않은 봄이 지나갈 때

모퉁이마다 깨어나지 못할 꿈속에

별들이 내려앉는다


여기는 물을 잃은 포구

꽃을 잃은 달의 뒷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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