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백인 남성이라는 벽을 부수다

레이첼 리어스 감독.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by 백승권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벽은 애초 안전을 위해 세워졌을 것이다. 적으로부터 우리 편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데 벽이 점점 한계가 되는 시기가 오기도 한다. 시야를 가로막고 걸음을 멈추게 하는, 가능성의 폭을 좁히고 점점 더 많은 구성원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벽 바깥에 천상의 행복이 기다리는 게 아닌, 벽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면 벽에 창과 문을 만들어서 통하게 하지 않으면 현재의 내부가 불바다가 될 수도 있는 상황. 시간은 오래된 것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낡고 고이고 썩어 냄새나고 전부를 오염시킬 뿐. 벽 바깥으로 삶과 생각, 관점을 확장하지 않으면 벽 안에서 모두 사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멸 전까지 혜택을 누리며 살고 싶은 세력이 있다.


애초 혁명을 일으킨 자들, 소수였던 무리의 생존을 위해 벽을 세웠던 자들. 벽을 세웠던 자들은 벽 안에서 권력과 풍요를 누렸으니 벽의 균열을 벽 바깥으로의 확장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벽을 더 높고 두껍게 강화하려 할 뿐, 이렇게 자신들의 이익을 견고하게 유지하려 할 뿐, 벽을 깨려는 모든 시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막힌 벽 안에서 쓰러져 가는 수많은 약자들, 아이들, 여성들, 유색인종들... 이들은 벽을 부수지 않으면 더 많이 죽어갈 뿐이다. 벽이 확장되지 않으면 주변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죽음도 맞이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직접 나서기로 한다. 가까운 이들의 끔찍한 죽음을 겪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때, 벽을 부숴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스스로 직접 나서기로 한다. 대표가 되기로 한다. 정치인이 되기로 한다. 선거에 나가기로 한다. 최초의 벽을 만든 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기로 한다. 이 싸움은 애초 승리가 불가능하다. 가능성만 보고 시작한 싸움이다.


기득권들 누구도 약자들의 예비 영웅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약자들만이 그들의 곁에서 연대하고 싸우고 외친다. 희생을 잊지 않고 어둠과 상처를 견디며 나아간다. 갯벌에 빠진 몸통과 다리를 꺼내어 겨우 볕을 향해 나아간다. 어느 여성 후보는 아픈 자녀를 병원에 데려갔지만 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고 결국 사망했다. 이런 고통을 잊고 살 수 있는 부모는 없다. 어느 여성 후보는 동네에서 어린 흑인 소년이 총에 맞아 숨졌다. 흑인 커뮤니티는 이 사건을 잊지 않는다. 어느 여성 후보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생계를 위해 웨이트리스 일을 한다. 백인 남성 부자들로 가득한 미국 정치계에서 저소득 여성 유색인종의 등판은 화젯거리다. 하지만 선거의 목적은 승리, 승리가 없다면 모든 과정은 무효가 된다. 목적은 현실 사회의 실질적 개선을 통한 이상적인 미래 구축이지만, 승리하지 못하면 도착하지 못한다. 시도하지 못한다. 바꾸지 못한다. 모두가 떠난 텅 빈 사무실에서 퉁퉁 부은 양손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해야 할지도 모른다. 선거는 숫자고 결과니까, 패자는 경험을 제외한 전부를 잃고 떠나야 하니까.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벽을 부순다. 승리한다. 결과를 바꾼다. 패자보다 더 많은 실질적 지지를 획득한다. 달걀로 바위를 깬다. 보통 달걀이 아니었으니까. 앞으로도 수많은 달걀들이 벽을 향해 돌진할 것이다. 벽을 부술 수 있다는 가설을 직접 증명했으니까. 더 많은 벽들이 부서지고 더 많은 어둠이 사라지고 있으니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은 백악관 입성을 위해 미국을 변화시킬 위해 여성 후보들의 선거운동 과정을 그린다. 백인 남성들이 오랫동안 쌓고 지키던 벽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 목적이 한쪽의 파괴와 전멸이 아닌 다양성의 공존과 소외된 자들의 권리 회복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우리나라엔 두 명이 떠오른다. 정의당 장혜영, 류호정 의원, 그들이 홀로 걷지 않기를 응원한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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