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오바마의 비커밍, 나는 그의 부속물이 아니다

나디아 할그렌 감독.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

by 백승권



"그 사람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 그저 부속물이 되긴 싫었어요"


"남편이 날 행복하게 하는 게 내 행복의 전부가 아니란 거죠"


"우리의 얘기가 가치 있다는 걸 믿어야 해요"





옳은 이야기는 지루하다. 익숙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 아는 이야기 반복 반복 반복... 다 아니까 그만해!라고 말하기 어려운 건 옳은 이야기가 다수의 옳은 삶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지겹고 쉽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어느 거리에선 옳은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곳에선 흑인이 후드를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총에 맞아 죽는다. 흑인 가족이 옆집으로 이사 왔다고 이웃집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간다. 조상 세대가 받던 핍박이 자녀의 자녀가 학교에 다닐 때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수많은 흑인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전 세계 누구와도 다른 지위에 오른 여성, 미셀 오바마. 미국 전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 북투어 여정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비커밍은 오바마 대통령의 음영을 최대한 지운다. 시대의 아이콘이 된 한 여성 자체로서의 미셸과 주변의 여성들에 집중한다.


미셸은 국가와 가족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중요 구성원이지만 한 개인으로서 오롯이 나아가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 동시에 자신의 지위를 잊지 않는다.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 흑인 여성이라는 부담감, 세계 최대 강대국의 대통령의 아내라는 무게, 말 한마디, 눈 깜빡거리는 하나까지 수백만 대의 카메라에 감시당해야 했다. 자유롭고 탁월한 언변, 화려한 의상은 금세 타깃이 되었고, 대통령의 지위를 흔들기 위한 약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무엇을 하든 비난의 대상이 되고 무엇을 안 해도 책임이 따르는 자리, 그리고 여성, 결혼과 출산을 겪는 여성으로서의 피할 수 없는 고난, 육아를 뒤로 한채 홀로 헬스장으로 가는 남편 오바마에 대한 야속함과 이어지는 각성, 백악관 입성 후 흑인 고위직을 따르는 흑인 직원들에 대한 자녀들의 관점을 바꾸기 위한 시도들(현대 시대에 흑인 귀족의 옷과 이불을 정리하는 흑인 노예의 이미지를 당연한 모습처럼 학습시켜선 안된다), 아버지에 대한 깊고 진한 그리움,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희망적인 메시지의 전파, 세대를 아우르는 포용력, 흑인 커뮤니티가 감내해야 하는 부당함에 대한 근원적인 근심, 오랜 스텝들을 향한 애정과 의리... 다큐멘터리는 미셸을 영웅이 아닌 지위를 견디는 인간으로 읽어낸다.


현재의 한계를 직시하고 불확실성을 딛으며 나아가는 일은 이론가들에겐 유명하지만 실행자들은 찾기 힘든 일이다. 위험과 두려움과 끊임없이 마주하는 일이다. 아무리 강력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더라도 아주 극소수만 만인의 갈채를 얻을 수 있다. 갈채를 위한 일이 아니더라도 응원과 지지가 없다면 스포트라이트는 금세 희미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미셸 오바마는 존재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는 사람이었다. 흑인과 여성이라는 포지셔닝이 퍼스트레이디라는 자리와 만났을 때 다수의 흑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매너와 유머를 잃지 않고 품위와 열정에 희미해지지 않는다. 미셸이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미셸을 둘러싼 학생들, 청년들, 여성들의 반짝거리는 눈빛과 완전히 매료된 표정을 보면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한 거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미국 여성들의 워너비, 미셸은 그들에게 우상의 탄생이자 새로운 신화였고 승리한 현재이자 실현된 판타지였다. 근거리에서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터지고 목구멍에 울음이 차오르며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판단력이 마비되고 사지가 달달거렸다.


긍정과 확신의 에너지를 다수에게 오랫동안 전염시킬 수 있는 능력은 희귀하다. 같은 지위에 오른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장착되는 칩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를 말끔히 지운 미셸 오바마를 상상하긴 힘들지만, 미셀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 남편이라는 그림자 속에서 안락만을 영위하지 않는다. 임기를 마친 후에도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구축한다, 자유와 권리를 일반인이라는 평범성 속에 희석시키길 거부한다. 손을 내미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기꺼이 일부가 되어 무리를 이끌고 메시지를 전한다.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기준이자 심지로 당당히 나선다. 비커밍 다큐멘터리에서는 연출자의 내레이션이 없다. 미셸 오바마의 아우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채워져 있다. 다음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면 그때는 전 퍼스트레이디가 아닌 미국 대선 후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대가 다시 광장의 중앙으로 소환할 것이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keyword
이전 03화우리만의 왕국, 사랑과 살인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