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코헨 감독. 우리만의 왕국
맥락을 파악하는 건 사건의 동기와 배경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 사건이 자살이라면 복잡해진다. 죽은 사람이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다. 여섯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 아내를 둔 남자가 경찰에 자살한다고 신고한 뒤 숲에서 자살한다. 그는 몇 장의 유서와 엄청난 양의 필기로 기록된 수권의 일기장,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보낸 엄청난 시간들을 담은 영상을 남긴다. 버려진 공간에 남겨진 그의 유품 중에는 딸들에게 보내는 애정 어린 자작곡 카세트테이프들도 많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우리만의 왕국'은 그가 죽은 후 남겨진 가족들을 수년 동안 인터뷰한다.
아빠가 돌아가신 건 사고가 아니었어요. 아빠의 선택이었죠. / 우린 삶의 목적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 매일 밤 울면서 자살하고 아빠를 보러 갈까 생각해요. 모르겠어요. / 저희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택하신 거죠... 중략...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인터뷰 내용 중
인터뷰는 타자를 향한다. 청자를 고려한다. 걸러진 생각을 풀어놓는다. 내면의 필터를 통해 정제된 결과물이다. 물론 이렇게 치밀하고 내밀한 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고백의 속성으로 볼 때 스스로에게 가시적인 솔직함을 강요하기도 한다. 만에 하나 거짓을 말하고 나중에 받게 될지 모를 지탄을 상상하며. 아빠를 잃은 자녀들은 하나같이 그리움을 토로한다. 7년이 지났지만 상실감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눈물이 마르지 않고 지금은 대답할 수 없는 그에 대한 수많은 의문과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오랜 날들 사랑받은 자로서 떠난 이에게 사랑하는 맘을 전한다.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를 유족으로 설정했을 때, 대중이 기대하고 예상한 모습을 보여준다. 슬픔의 진위를 의심하는 게 아니다. 다른 고백들이 남아있었다.
4시간씩 저희를 앉혀두고 고함을 지르시곤 했거든요. / 제가 창녀처럼 생겼다고 말씀하셨어요. / 이혼이 마무리되기 4주쯤 전에 폴이 자살했을 거예요. / 엄마에게 복수할 계획이 있었죠. 우리 모두를 죽이고 엄마를 죽인 다음 자살하실 거라고 쓰여 있었어요. / 아주 상세했어요. 모두를 침실에 가두고 하나씩 죽일 생각이었죠. *인터뷰 내용 중
죽은 자는 천사가 아니었다. 치밀하게 대학살을 계획한 범죄자로 묘사하는 게 더 가깝다. 아내와 자녀들은 그의 흔적들로 점철된 어지러운 집에서 그가 남긴 어둠 속에서 그가 남긴 영상을 감상하며 웃고 울며 독립할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 즐겁고 뭉클하고 애틋하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어린 시절 함께 지낸 아빠라는 인간의 모습을 추억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수년 동안 계획적으로 집안의 모든 탈출구를 봉쇄하고 가족 구성원 전부를 몰살시키려 했다는 점은 전자의 고백으로 상쇄될 수 없다. 범죄 대상은 그가 수많은 영상 속에 담았던 바로 그 아이들, 자신들이었다.(그들은 이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표현된다) 사랑한다 말하며 죽이면 용서가 되나.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계획을 다 세웠겠어, 어차피 죽은 사람 그만 이해해주자 이러면 되나. 그의 남은 가족들은 가해자 없는 집에 평생 갇힌 피해자가 되었다.
남은 자들은 죽은 자를 향한 무한의 의문으로 수많은 시간 괴로워야 했다. 물리적인 빈자리가 익숙해져도 내면의 고통과 불확실한 해석은 혼돈을 가중시켰다. 최대한 그를 좋은 사람으로 왜곡시켜야만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상받을 수 있었다. 그에게 못다 이룬 음악가의 꿈이 있었고 딸들에게 물려주고 싶었으며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하고 자신의 성 안에 가두어 사육하려 했다는 것을 한없이 포장해야 했다. 가장 사랑했던 가족 구성원이 가족 전부를 죽이려 했고 끝내 스스로를 죽였다는 사실에... 그때 만약 그랬더라면... 그때 그렇게 말했더라면 그때 만약... 이런 식으로 면죄부를 부여하기 위해 온갖 가정을 다 동원해야 할 것이다. 평생에 걸쳐. 그래야만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당연히 살해당해도 되는 존재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를 권력과 계획을 지닌 성인 남성이 아닌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죽일 수밖에 없는 심약해진 인간으로 여기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과 싸워야 할 것이다. 인간이 복잡한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가족도 그렇다는 걸 인정하는 건 난처한 일이다. 어느 누구도 (잠재적) 살인자와 매일 저녁 같이 밥을 먹고 웃고 떠들며 지내고 있다고, 자신의 삶을 하나의 케이스로 여기고 싶진 않을 테니까. 아이들은 자라며 하나둘 독립을 하며 집을 비운다. 집을 떠나도 그를 떠날 순 없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을 죽이려던 남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삶을 거두기 전 그는 이런 결과까지 계획했을까.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