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코트 감독. 카운슬러
다이아몬드는 세공이 아닌 흠으로 평가된다는 말, 서구 문명에 신을 빼앗긴 유대인들의 이야기, 시체를 깡통에 넣고 전 세계를 순회하게 하는 장난, 어린 소녀들을 납치 후 강간하고 죽이는 마약조직들의 엽기 범죄, 울고 있는 여자를 죽인 후 시체를 훼손하는 장면을 담은 스너프 필름, 프러포즈를 받고 눈물 흘리며 내가 먼저 죽을 거라는 여자의 약속, 어릴 적 부모님이 모두 헬기에서 바다로 내던져진 사연을 가진 여자, 치타가 전속력으로 달려가 토끼를 사냥하는 것만큼 순수한 본능은 없다는 예찬, 복잡한 모터로 작동되며 목을 서서히 조여 오는 절대로 끊을 수 없는 줄, 참수 퍼포먼스,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범죄를 비즈니스로 만드는 시스템, 우연을 믿지 않는 사람들, 총격전을 벌이다 쓰러진 시체로 달려와 시계를 풀고 신발을 벗겨가는 소년들, 실수를 저지른 세계와 실수를 되돌리는 세계의 극단적 차이, 탐욕의 끝이 파멸이 아닌 파멸 자체가 탐욕의 속성이라는 유언 같은 대화, 당신의 문 안으로 도끼가 들어왔을 때 난 그 자리에 없을 거라는 여자의 냉혹한 눈빛.
인간의 탐욕을 그린 이야기는 많다.
탐욕엔 기준이 없어서 차오르면 차오를수록 탐욕의 주체인 인간은 자신이 기대하는 스스로의 용적량을 계속 늘려나가고 계속 들이붓고 채워나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선을 넘어왔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떠난 버스.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으로 감싸고 거머쥐었던 몸뚱이는 처참하게 잘리고 구멍 난 고깃덩어리로 바뀐다. 숨이 붙어 있을 리 없고 이 또한 본보기로 전시된다. 마약과 범죄에 속한 개인을 다룬 스릴러 장르의 픽션은 대부분 이 정도에서 비극을 보여주고 마무리했었다. 표면적으로는 카운슬러도 다르지 않다. 불안은 끊임없이 예고되고 경고되지만 인간이란 법을 공부하고 학위를 땄다고 해서 그걸 알아채고 몸을 피할 만큼 현명하지 못해서 늘 극형을 당하고 만다. 클래스가 다른 럭셔리 자동차와 휘황찬란하게 스타일링 된 옷, 정제된 매너와 목소리,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고뇌까지. 그리고 이 모든 게 한낱 신기루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처참한 반전. 코맥 맥카시가 시나리오를 쓰고 리들리 스코트가 연출한 카운슬러는 선을 넘은 개인의 탐욕과 그 비참한 끝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프레임을 씌운다.
두 개의 세계, 아니 하나의 세계 안에서 공존하는 두 개의 질서들.
세계를 보여준다. 도덕적 판단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일들이 일상처럼 일어나는 세계와 그 세계로 입성하기 직전의 세계. 실수가 개인과 개인의 주변인과 개인의 세계를 완전히 말살할 수 있는 세계와 그 세계로 입성하기 전에 이를 경고하는 세계. 장난으로 시체를 비행기로 실어 나르고, 장난으로 소녀를 납치해 강간한 후 죽이고, 장난으로 그 죽는 장면을 찍어서 보여주는 세계와 그 세계로 입성하기 전에 이를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세계.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발을 들이는 순간, 가장 먼저 표적이 되는 세계와 이것을 구분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던 세계. 사랑하는 여자에게 3.7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로 프러포즈를 하고 영원을 맹세하는 세계와 그 반지를 받은 여자가 납치되어 쓰레기장에 나뒹구는 시체가 되고 참수와 능욕 장면이 CD에 담겨 배달되는 세계.
한 번 빠지면 세계의 일부가 되어 자신과 자신의 주변과 자신의 세계가 완전히 괴멸된다. 왜 인간은 쓸데없이 긍정적일까. 자신의 부조리가 누적되고 수익으로 돌아왔을 때, 기회가 더 많이 더 크게 주어질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걸까. 개인이 아닌 개인의 역사, 그 역사에 관계된 이들, 이 모든 걸 안고 있는 세계가 완전히 무너질 거라는 경고를 들었으면서도 무간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까. 질문이 틀렸다. 심각한 질문을 안고 그 세계 안에서 오래 살아남은 이는 없다. 틀려도 죽이고 싫어도 죽이며 무료해서 죽이고 의심돼서 죽이며 본보기로 죽이고 장난으로 죽인다. 악마는 인간이 자멸할 줄 알면서도 질문을 던졌다. 팔다리가 날아가고 목이 나뒹구는 일상을 견딜 수 있겠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폐로 도배된 방을 얻기 위해 이 길을 같이 가겠냐고. 쿨한 척 수락한 순간, 목에는 이미 모터가 달린 철사가 경동맥을 파고들며 참수를 시작하고 있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는 건배와 함께.
술과 마약, 파티와 돈에 빠져 강을 건너는 순간, 시험지가 주어졌던 세계로 가는 문은 완전히 닫혔다. 돌아갈 수 없다. 잠깐 챙기고 적당히 풍요로운 생활로 돌아설 거라는 계산은 모두가 했지만 전부가 죽었다. 새로운 세계는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 세계를 움직이는 이들에 의해 모든 종류의 처단과 죽음이 존재했다. 값어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의건 타의건 실수가 발생했다면 그래서 손실이 발생했다면 되갚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실수는 룰의 파괴였고, 대가는 몰살이었다. 룰의 변수를 기획한 자가 누구이든, 실수를 저지르게 한 동기가 선의든 복수심이든 상관없었다. 결과로 말해지고, 우연은 믿지 않는 이들이 통치하는 세계였다. 한 명이 전부를 주무르는 것이 아닌 하나의 질서를 따르는 모든 이들이 나누어져 자신의 순수한 임무를 수행하고 그 결과로 대상이 된 개인과 그의 세계를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세계였다.
수캐와 암캐들이 노는 세계는 차라리 순수했다. 그들은 눈요기 거리였고 고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급자가 되고 과정의 일부가 되는 일은 같은 공간 안에서도 두 개의 세계를 형성했다. 모험이 주는 쾌감에 중독된 인간은 방향을 상실한 채 같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대가로 모두를 잃는다. 과정의 일부가 되어 잠깐 재미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에겐 그렇게 하지 않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전부를 잃는다. 가치 없는 슬픔에 절규하고, 가치 없는 상실감에 빠지며, 가치 없는 공포감에 전율한다. 아무것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더 숨이 붙어 있다면 그만큼 오랫동안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가 있는 현재의 세계는 전의 과거와 다른 세계였으니까. 시간으로 구획할 필요도 없이, 동시대에 있는 수많은 세계 중에 그는 하필 현재의 이 세계를 선택했고 기대했으며 실행했고 실수했으니까.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용납될 수 없는 세계, 실수 이전의 세계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계 속에서 그(마이클 패스벤더)는 영영 자신을 변호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