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의 시간, 40편의 오리지널에 대하여
지난 90여 일 동안 40편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를 썼다. 그저 썼을 뿐이다. 영화라는 유니버스에게 리뷰라는 쓰기 활동의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생각과 의견, 경험의 기록을 통해 타인의 관람에 약간의 참고 정도는 될 수 있겠지만 딱 그 정도다. 한 사람과 한 영화가 만나는 건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이뤄지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시간이 지나야 만날 수 있는 영화가 있고 전혀 정보도 관심도 없었지만 경계 없이 들어오는 영화도 있다. 이런 엇갈림과 기다림 속에서 영화는 한 사람의 경험과 기억이 된다. 그 사람을 영원히 바꾼다. 한 영화를 경험한 사람은 그 영화를 경험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영화를 본 사람이 되고 그 영화를 경험한 채 남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비장한가 라고 갸우뚱할 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렇다. 영화는 내게 그런, 운명적인 대상이다.
90일은 긴 시간이다. 넷플릭스는 하나의 좌표였다. 자격을 획득했고 이행하려는 의지는 오랜 기간 내재되어 있었다. 어떤 충성심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넷플릭스라는 이름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 시각 그 자리 그 순간에 넷플릭스에게 초대받았고 착석과 감상을 합의했을 뿐이다. 조금 더 솔직해보면 글쓰기에 대한 탐닉을 채우기 위해 넷플릭스를 방아쇠로 활용한 걸 수도 있다. 영화 이전에 글이 있었다. 이번 활동은 영화 이후에 글쓰기였을 뿐이다. 물론 이것 역시 다시 영화로 연결될 글쓰기. 드라마와 스릴러 장르를 주로 좋아하는 편인데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었다. 영감과 상상력에서 시작된 각본이 아닌 (대부분) 동시대 현실과 사건에서 시작된 각본, 극영화에 비해 생생한 목소리와 노골적인 갈등이 있었고 카메라 앞이었고 편집이 가미되었지만 생동감에서 오는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논픽션에서 읽히는 비극들은 다들 생경했고 그래서 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보통 극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거기서 감상은 끝이지만 다큐멘터리의 인물과 사건들은 여전히 울림이 컸다. 카메라가 꺼진 들 그들의 생활까지 꺼질 리 없었다. 그들의 인생은 촬영지와 스튜디오가 아니었다. 끝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예술부터 살인까지 다큐멘터리는 오늘과 지금에 대해 묻고 있었다. 감상하는 내내 처절한 무지가 부끄러웠다.
넷플릭스를 켜는 건 미로 속으로 들어오는 일이다. 모두가 길을 잃고 다수가 착각하며 일부는 자신만의 스위치를 찾아 하나하나 조명을 밝힌다. 자신의 영화를 찾는다. 자신의 시간, 취향, 세계를 연결한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각자의 미로를 그리고 벽을 더듬으며 나아간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스스로의 낯선 취향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며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별로인 점을 자각하게 되기도 한다. 출구는 없다. 우리는 해결책을 찾으려고 영화를 보는 게 아니다. 잠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다. 낯선 자의 이야기 속에서 위로 같은 걸 받고 싶을 뿐이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잠시 멈추고 싶을 뿐이다. 별다른 계획도 거창한 비전도 없이 현실의 무거운 먼지를 잠시 털어내고 아무렇게 앉거나 누워서 또는 말없이 서서 흔들리는 대중교통수단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서 누굴 기다리며 또는 아무도 없는 방구석에서 침묵의 목격자 그리고 경청자가 되고 싶을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 안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90일 동안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내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