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인천 앞바다에 사는 잉어 용녀에겐 일곱 명의 자식이 있었어. 그들은 스무 살이 되어야만 월미도 구경을 갈 수 있었지. 유일한 아들이자 막내, 잉어 왕자는 월미도에 대한 환상과 갈망이 가장 많았어. 왕자라는 이름은 잉어 용녀의 첫사랑 이름에서 따온 거야. 용녀의 첫사랑의 어종은 붕장어였지만 자신을 잉어 귀족 가문의 장손이자 이름은 왕자라고 속였지. 당시 붕장어의 짜릿한 매력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었던 용녀는 최면이라도 걸린 듯 다 믿었어. 붕장어는 용녀 집안이 대대손손 모은 천연 진주를 다 가지고 도망쳤지. 용녀는 붕장어가 오호츠크해 출장을 간 거라며 하염없이 기다렸어. 그 시기에 태어난 왕자를 둘 사이에 가진 아이라고 믿으며. 이 이야기는 잉어 용녀 집안의 비밀처럼 내려오지만 지금은 오대양의 모든 어류가 다 알고 있단다.
스무 살 생일을 맞은 잉어 왕자는 마침내 월미도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어. 잉어 왕자는 스무 살 기분에 취해 디스코팡팡에서 은비늘이 다 털리도록 즐거움을 만끽했지. 그러다 바로 옆에 앉은 공주를 발견하게 된 거야. 웹서핑을 통해서만 인간의 미모를 알던 잉어 왕자에게 공주의 첫인상은 감전될 듯한 충격이었어. 그러다 갑자기 마른하늘에 천둥벼락이 쏟아져 디스코팡팡을 덮치고 결국 디스코팡팡은 산산조각이 나며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지. 잔해 속에서 부상당한 공주를 발견한 잉어 왕자는 후다닥 119를 불러 공주를 구해냈어. 덕분에 공주는 무사할 수 있었지만 자신을 도운 잉어 왕자의 존재를 알아차리진 못했지. 그저 잉어의 탈을 쓴 월미도 아르바이트생이 직업 정신을 발휘한 정도로 여겼던 거야. 말이라도 한번 건네 볼까 기대했던 잉어 왕자는 상심한 채 인천 앞바다로 돌아갔어.
집으로 돌아온 잉어 왕자는 공주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어. 막내를 걱정하는 여섯 누나들에게 그날의 사건과 감정을 털어놓았고 누나들은 인맥과 SNS를 총동원해 공주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알아내지. 공주가 업로드한 여러 사진과 릴스를 보며 잉어 왕자의 호기심과 열망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어. 공주와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어느 날, 인천 횟집에서 오래 근무하셨던 광어 할머니로부터 묘안을 하나 듣게 되지. 잉어 왕자는 망설임 없이 광어 할머니가 알려준 성형외과를 찾아가기로 해. 입구에는 인어공주와 함께 찍은 원장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지. 성형외과 원장 농어 마녀는 상담하며 잉어 왕자에게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여러 번 강조했어. 그만큼 위험 부담이 따랐으니까. "공주의 관심을 끌만한 아름다운 미모와 인간의 다리를 얻는 대신 걸을 때마다 날카로운 칼날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만약 공주가 다른 인간과 결혼하게 되면 당신은 외모와 다리를 모두 잃은 채 죽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외모와 다리를 얻는 후유증으로 성별이 바뀌게 되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한번 결정하면 되돌릴 수 없고 막대한 수술비는 당신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은비늘을 떼어내어 모두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차분한 눈빛으로 다 듣고 난 후 잉어 왕자는 망설임 없이 모든 동의서에 사인을 했어.
다시 월미도로 간 잉어 왕자는 인간의 모습으로 공주와 마주했어.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잉어 왕자의 수려한 미모에 반한 공주는 단숨에 사랑에 빠지게 되지. 하지만 공주는 잉어 왕자를 정식 애인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어. 왕자와 공주는 성별이 같았고 공주는 왕자를 사랑했지만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주변 시선과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거든. 잉어 왕자와 말 못 할 거리감을 느끼던 공주의 마음 한구석에선 오래전 디스코팡팡 사고 현장에서 119를 불러주었던 친절한 잉어탈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어. 어느 날 공주는 새로 개장한 디스코팡팡에서 새로운 청년과 만나게 돼. 그곳에서 공주는 이 청년을 과거 자신을 구해준 잉어탈 아르바이트생으로 착각하고 새로운 사랑에 빠져 결혼하기로 하지. 사실 그가 잉어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공주는 점점 비릿해져 가는 잉어 왕자와의 현재 연애를 끝내고 싶은 맘뿐이었으니까. 끝을 직감한 잉어 왕자는 사실 자신이 그날 잉어탈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털어놓지만 공주는 믿지 않았어. 그저 질투에 눈먼 잉어 왕자의 거짓말이라고 여겼지. 둘은 그렇게 헤어졌어.
공주의 결혼식 날, 잉어 왕자를 안타깝게 여긴 잉어 누나들과 광어 할머니, 잉어 용녀는 자신들의 은비늘을 몽땅 팔아서 잉어 왕자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방도를 찾아내. 바로 동이 트기 전까지 농어 마녀의 칼로 공주를 죽여 다시 잉어 왕자를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어. 하지만 잉어 왕자는 결국 공주를 찌르지 못해. 칼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자신도 바다에 던져 버리지. 농어 마녀의 경고대로 이제 죽음과 소멸만이 남아있었지만 기이하게도 그는 죽지 않고 원래 몸으로 돌아오게 돼. 그제야 농어 마녀는 잉어 왕자에게 실제 인간의 다리를 붙여주고 성전환 수술을 한 게 아닌 최면을 건 것이었다고 실토하지. 잉어 용녀가 자기 절친인데 하나뿐인 아들을 잃게 할 순 없었다며. 잉어 왕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은비늘을 매만져. 농어 마녀의 목에 걸린 진주가 눈에 익숙했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지. 그리고 공주와 처음 만났던 월미도 쪽을 지긋이 바라보며 공주의 축복을 빌어 줬어. 잉어 용녀는 나도 네 심정 다 안다며 돌아온 막내아들을 위로했어. 오호츠크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잔잔해진 파도 끝 윤슬 속으로 디스코팡팡의 비명소리가 옅게 스며들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