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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Sep 30. 2021

로켓맨, 사랑 받고 있다는 오해

덱스터 플레처 감독. 로켓맨

원하는 사람이 되려면 과거의 너 자신을 죽여야 해


영원히 외로운 삶을 선택했단 것만 기억하렴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도 지겨워요


어릴 적 사랑받지 못했던 아이가 훗날 만인이 사랑하는 천재 슈퍼스타가 되는 이야기는 익숙하다. 사람들은 건조한 일상에 벼락처럼 등장한 천재에게서 시력을 잃고 청각이 마비되며 환호를 지르다 목소리까지 잃는다. 천재도 몰랐다. 자신이 천재인 줄 몰랐고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고 순식간에 백만천만억만장자가 될 줄 정말 몰랐다. 먹다 뱉은 알사탕에 까맣게 모여드는 개미떼처럼 엘튼 존(태런 에저튼)에겐 팬과 매니저, 스텝과 기자, 그리고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이 몰리고 몰린다. 수순이자 숙명, 엘튼은 저항하지 못한다. 부모에게서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평생을 안고 갈 결여가 있는 엘튼에게는 이게 사랑인지 사기인지 신기루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사랑의 기본값이 없어서 비교 대상이 없었다. 엘튼은 오해한다.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나도 사랑해야겠구나. 나는 사랑받고 있으니까. 


이 오해가 한 음악인의 인생과 그의 팬들이 사랑하는 곡 리스트를 영원히 바꿔버린다. 엘튼의 잠재력은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거대한 명성이 되고 그 주변에서 별이 쏟아내는 돈다발을 함께 퍼 나르기 위한 유혹들이 깔리기 시작한다. 존 레이드는 그 유혹의 중심이자 블랙홀이었다. 엘튼은 그와 사랑에 빠지고 소속사를 바꾸는 초유의 결단을 내린다. 프로모션 전략이 바뀌고 엘튼은 점점 상품과 인간 사이에서 현기증을 호소한다. 술과 마약에 절여진다. 자살충동에 휩싸인다. 끊임없이 불안과 두려움, 슬픔과 우울에 빠진다. 그중 최악은 자신을 사랑하는 줄 알았던 운명이라 여긴 대상이 알고 보니 자신의 생각과 달랐다는 점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줄 알고 내 모든 걸 바치며 나도 사랑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내가 이용당한 거였어?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당장 엘튼이 죽는다 해도 사후 앨범 판매 매출의 상당한 부분이 영구적으로 존에게 돌아가기로 명시되어 있었다. 당시 사랑에 눈먼 엘튼에게 그렇지 않았던 존이 내민 계약서 내용이었다. 엘튼의 운명이 존(리처드 매든)에겐 비즈니스였다. 둘은 동반자 관계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엘튼은 파도에 휩쓸리는 모래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떠난 해변에서 누구도 엘튼이라는 모래성을 돌보지 않았다. 


전 세계가 열광한 슈퍼스타 억만장자가 되었다 한들, 부모에게는 남들이 흉보는 창피한 동성애자, 한 번도 맘에 들지 않았던 남자답지 못한 놈이었다. 누가 생물학적 부모를 바꿀 수 있나. 목에 칼과 돈을 들이대고 사랑을 강요한들 무슨 소용 있나. 사회적 성공은 애정의 척도가 될 수 없었다.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지 못한 죄책감이 하염없이 짓눌렀다. 모든 노래에 날 사랑해달라고 써서 부르짖고 만인이 환호해도 메워질 수 없는 공허는 터널처럼 깊었다. 엘튼의 결여는 타인에 의해서만 컨트롤될 수 있다고, 엘튼 스스로 정의하고 있었다. 부모들은 화석 같은 사람이고 운명의 사랑은 알고 보니 악마 같은 새끼였으니 엘튼은 이름을 바꾸고 처지를 바꾸고 사상을 바꾸며 결국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세계를 볼 수밖에 없었다. 자기혐오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들로부터 해소될 수 없는 고통을 받는, 타인이 구축하고 스스로 강화시킨 시스템으로부터 탈출해야 했다. 나를 제대로 사랑한 적 없어서 시간과 연습이 필요했다. 당연하지 않은데 당연하다 여긴 대상들을 향한 입장을 바꿔야 했다. 중독의 사슬을 끊어야 했다. 과거의 엘튼 존이 아니어도 충분히 끝내준다는 점을 증명해야 했다. 전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다시 로켓이 되는 법을 발견했다.


성공을 운의 문제로 판단하면 쉽다. 하지만 성공의 그늘은 더 긴 문장이 필요하다. 대다수의 인류가 자신이 진짜 누구이고 무엇이 부족하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답을 내리지 못하는 삶 속에서 엘튼 존은 영화로까지 남을 만한 극적인 서사를 남겼다. 모두가 엘튼 존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날 순 없지만 많은 이들이 엘튼 존 같은 부모 밑에서 암울한 어린 시절을 경험한다. 불행한 삶을 산 부모는 자식에게 불행한 삶의 이유를 찾고 비난하며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불행한 인간은 결국 자신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다른 불행한 인간을 만들며 새로운 불행한 인간은 다시 새로운 불행한 세계를 이어나가는데 한 축이 되는 것이다. 엘튼도 이 축의 막강한 일부가 될 뻔했다. 다행히 그렇게 되지 않았을 뿐이다. 순수한 엘튼 개인의 의지로 돌파한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재의 엘튼은 불행의 연대기를 끊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간은 음악이 되고 음악은 이렇게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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