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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Oct 22. 2021

그린 나이트, 어차피 목이 잘리는 삶에 대하여

데이빗 로워리 감독. 그린 나이트

모두가 방향과 목적을 안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러지도 않는다. 감당할 뿐이다. 대가를 치르며. 가웨인(데브 파텔)도 그랬다. 그래도 되는 집이었다. 엄마의 형제가 왕이라니. 왕(숀 해리스)은 늙고 후계자는 없고 표정은 어두웠다. 엄마(새리타 커드허리)는 말수가 적었다. 하지만 그 깊고 초연한 눈빛 속에는 자식을 위해 누구의 목이라도 벨듯한 결기가 서려 있었다.

 

왕이 호출한다. 영웅담을 원한다. "아이고... 제가 뭐라고 그런 게 있을리가요... 이 자리에 날고 기는 기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게임이 시작된다. 가웨인 히어로 메이킹 게임. 나무와 이끼로 뒤덮인 괴형체의 기사가 찾아오고 우화와도 같은 게임을 제안하고. "네가 내 목 자르면 나도 니 목 잘라" 모두가 망설이는 사이 가웨인은 받아들인다. 방탕한 삶은 무료했고 가웨인은 젊고 무모했으며 왕 옆에서 어떤 액션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과 충동이 뒤섞여 있었다. 내가 할게. 목이 뒹굴고 목은 떠난다. 약속한 1년이 지난다.

가웨인은 그린 나이트 목 자른 영웅으로 내내 칭송과 환대를 받는다. 그리고 아무 준비도 하지 않는다. 그저 떠날 뿐. 터덜터덜 말에 오른다. 광활한 외길 위로 홀로 떠난다. 친절을 갚지 않은 죄로 모든 걸 빼앗기고, 연못에서 건진 잘린 목에게 정보를 얻으며, 어린 왕자 그림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여우와 동행하고, 거인의 어깨에 오르려다가 실패하며, 죽기 직전 문을 열지만 유혹에 휩싸인다. 과정의 고난이 비장한 목적을 상쇄한 지 오래였다.


그린 나이트에게 목 잘리러 가는 여정이 가웨인 생애 최초의 목적이자 영웅담이 되고 있었다. 마침내 도달한 그곳에서 막상 목을 내밀지만 가웨인은 귀부인(알리시아 비칸데르)이 말했듯 (세상이 인정하는) 기사가 아니었다. 기사다운 기사가 아니었기에. 막 도달한 죽음의 칼날 앞에서 한없이 두렵고 무서웠다. 공포가 만든 환상 속에서 가웨인은 집에 가고 왕관을 쓰고 배신을 하고 아이를 빼앗고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백성에게 미움받고 나라를 망친다. 세상의 붕괴 속에서 미신과 부적 같던 끈이 풀리고 가웨인의 신체 일부가 매끄럽게 떨어져 나가 굴러간다.


이래나 저래나 시시하게 살다가 목은 달아나겠구나. 끝은 어차피 댕강이구나. 깨달음은 깨달음이고 약속은 약속이고 칼은 칼이다. 그렇게 죽어라 고생하며 기사다운 약속을 지키려 찾아왔건만... 그린 나이트는 의아해한다. 아니 나한테 죽으려고 기어이 온 거야? 진짜 왔어? 나태한 삶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온통 구르고 다치고 헐떡이며 도달한 곳이 타인의 칼날에 목을 들이대는 형장이었다. 죽음이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기어이 죽어야 할 곳으로 삶을 데리고 왔구나. 죽음의 운명은 내가 만들었구나. 내가 자초했구나. 기어이 같은 결론에 다다랐구나. 위대한 고난은 누굴 위한 것인가. 최선을 다한 죽음은 자초한 자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인가. 배신은 늘 대가를 치르나. 부적이 목숨을 지키는가? 부적이 목숨을 지킨다는 믿음이 목숨을 지키는가. 성욕을 담보로 한 유혹 앞에서 기사의 명예는 얼마나 누추한가. 무녀인 어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나. 고난뿐인 삶 끝에 남은 건 공평하고 허망한 죽음뿐이라는 걸.


가웨인은 왕족으로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모든 허물과 비겁함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선택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개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환경은 없다는 것, 환경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 그린 나이트가 아니더라도 왕도 왕비(케이트 디키)도 빈 왕관을 남기고 죽는다는 것, 가웨인도 결국 그렇게 수밖에 없었다. 하여 숨 쉬는 내내 삶의 유한성만 한탄할 것인가. 가웨인은 기꺼이 기어이 움직인다. 말을 타고 나아간다. 이야기가 되기로 한다. 인간의 몸으로 죽어 사라질 삶, 이야기가 되어 입과 입으로 해석과 재해석으로 칭송과 조롱의 대생으로 인형극의 소재로 영원히 무형의 에너지로 남기로 한다. 가웨인은 진정 모든 무게를 훌훌 털고 맘껏 웃지 않는다. 그가 삶이란 게임에 제대로 로그인한 순간부터 모든 순간이 진지하고 엄중하며 어둡고 조심스러웠다. 제대로 살기로 작정한 것은 제대로 죽기로 작정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경우의 수에 똑같이 목이 잘려 뒹굴더라도 그는 스스로 약속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다른 삶 같은 죽음이더라도 다른 삶 다른 죽음이었다. 그린 나이트는 그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존중하며 가웨인을 뒤따를 다음 기사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죽일 것이다. 게임은 끝나야 하니까. 애초 삶이란 게임은 죽음을 이기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선택은 없다. 우리 모두 그린 나이트에게 지금 이 순간도 다가가고 있다. 녹색의 숲에서 경고하는 여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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