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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ug 05. 2021

맨헌트 유나바머, 늘 혼자인 사람은 늘 혼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맨헌트 유나바머

폭탄은 관심을 끌지만 이념은 혁명을 일으킨다


통제 힘 존경심 전리품


난 평생 분노를 느끼면서 살았어


괴물의 심연을 자꾸 들여다보면 괴물의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는 니체의 말은 어쩌면 이렇게도 응용할 수 있다. 타인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나라는 괴물이 보일 수도 있다고. 그런데 그 괴물이 왜 타인의 심연 속에 갇혀 있었을까. 왜 그 속에서 들키지 않고 그토록 오랫동안 웅크리다가 이제 발견된 걸까. 그것도 나에게. 왜 내 안의 괴물을 거기서 발견하게 된 걸까. 시작점을 가늠하는 건 쉽지 않다. 애초 세상이 그를 마구 짓밟으며 괴물을 잉태하게 했는지, 아니면 남들과 비슷한 고초를 겪으며 자란 자가 스스로를 괴물로 타자화시켰는지. 거대한 오해와 억측일 수도 있고 희생양일 수도 있고 그냥 1억 명에 한 명 정도 있는 미친놈일 수도 있다. 모두를 떨게 만들고 싶은, 모두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주고 그를 통해 외로움을 해소하고 싶은, 그런 한 마리 외로운 인간, 외로운 괴물, 또는 나. 내가 그의 안에 살고 있었어. 괴물이 되어. 그래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지. 이건 마치 영원히 해가 뜨지 않는 억겁의 암흑 속에서 헤매다가 서로의 숨소리를 들은 거나 마찬가지거든. 난 내가 유일한 줄 알았지. 넌 네가 유일한 줄 알았고. 사는 내내 겪어온 모든 과정과 거절의 경험을 최악의 고통과 괴로움으로 해석했어. 오직 나만이 겪은 줄 알았으니까 최대치의 악몽으로 말할 수 있었지. 난 그렇게라도 날 가장 우선순위에 둔 거야. 언젠가 올지 모를 언젠가에 알아주길 바라며. 그런데 나 말고도 이런 어둠을 지닌 자가 또 있었던 거야. 나와 완전히 다른 외형을 두고 나와 완전히 닮은 내면의 괴물을 키우고 있었지. 희귀종끼리의 동질감이랄까. 가장 특별한 괴로움을 겪은 자들이 세상의 끝과 끝에서 이렇게 만나 서로를 알아본 거야. 우리가 진정 어떤 자인지 정의할 줄 아는 자들은 우리뿐이야. 이 미친 세상을 제대로 해석할 줄 아는 자들은 바로 우리뿐이라고. 나의 오랜 분노가 세상에 편지를 보내며 그들의 얼굴과 온몸을 터뜨리고 전 미국인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했지. 왜 나를 무시하지. 왜 나를 고립시키지. 왜 나를 알아주지 않지. 왜 나를 휘두르려 하지. 왜 내 호의를 무시하고 왜 나를 떠나고 왜 대체 왜 너희들과 똑같이 대우하고 사랑해주지 않는 거지. 내가 이토록 애쓰는 걸 몰라주는 거지. 자 이 미친 세상에 대한 엄청난 고견을 들려줄 테니 잘 들어봐. 난 폭탄으로 유명세를 타려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듣도록 시선을 모으는 것뿐이야. 폭탄은 수단이지 결과물이 아니라고. 손가락을 찾지 말고 내가 찌르려 하는 달을 쳐다봐.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를 향한 엄중한 경고에 귀 기울이라고. 난 위대한 철학자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유일무이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거라고. 날 잡을 생각하지 말고 내가 무슨 이야길 하려는 지 잘 듣고 생각을 바꿔. 난 사상가야. 내 철학이 너희 모두와 미래를 바꿀 거야. 내 목적은 학살이 아닌 구원이야.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질 못하더군. 소돔과 고모라에서 단 한 명의 의인만 있었어도 화염 속에서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하지는 않았을 텐데. 너희에겐 여전히 더 많은 재앙이 필요한 건가. 그때 당신이 날 알아본 거야. 아니, 당신이 내 안의 괴물을 알아본 거지. 내 안에 살고 있는 너라는 괴물을 알아본 거야. 우린 어차피 같은 영혼을 공유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내가 아는 걸 너도 알아. 우린 서로 괴로움의 이유가 같지. 그래서 네가 날 알아본 거고 내 의견을 세상에 공개한 거고 이를 통해 우린 만나게 된 거야. 모두가 박수칠 때 우린 늘 어두운 곳에 있었어. 세상이 모두 거절하는 곳에 네가 있었고 또 같은 곳에 내가 있었지. 우릴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에 어떤 희망이 있을까. 유나바머로 불린 테러범 카잔스키(폴 베타니)를 알아본 건 프로파일러 피츠제럴드(샘 워싱턴)가 유일했다. 둘은 동질의 고립감과 깊은 열등감을 무기로 한 명은 테러를 한 명은 질서 유지를 도모했다. 둘의 보이지 않는 유대감을 관망하며 극악의 범죄를 막는 건 막강한 공권력이나 천재 수사관이 아닌 따스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라는 진리를 재확인했다. 개인의 역사는 저마다 뒤틀려 있고 상황과 반응 역시 엇갈릴 가능성이 더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상의 작은 선의가 폭탄 제조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결여된 인간은 결국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향한 복수를 꿈꾸며 오랜 시간을 소모한다. 출근길과 퇴근길, 동네 골목길과 수많은 공공장소 속에서 우린 잠재적 테러리스트들과 함께 부대끼고 있는 것이다. 서로의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면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건 작은 행동 하나 말 한마디 정도다. 그리고 이 선의 하나가 매일 하루씩 하루씩 폭탄이 터지는 시간을 늦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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