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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Oct 05. 2021

더 길티, 속죄의 시도들

앤트완 퓨콰 감독. 더 길티

앞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게 자욱하다. 세상은 연기로 뒤덮였고 과거부터 미래까지 모조리 불투명하다. 불지옥이 이럴까. 모두가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내 집이 불타고 있어요. 마당이 불타고 있어요. 빠져나갈 곳이 없어요. 살려주세요. 제발 구하러 와주세요. 죽고 싶지 않아요. 미국 모든 곳에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슈퍼맨과 브루스 윌리스가 있을 수 없어서 911이 전화를 받는다. 이름과 주소를 확인한다. 난 누구고 여긴 어딘지만 확인되어도 생존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위기에 휩싸인 일부는 판단력을 상실한다.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뭘 해야 하는지 뭘 하긴 해야 하는 건지 정하지 못한다. 무지와 불안, 공포와 두려움, 신경이 곤두서고 땀이 솟는다. 내가 나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하나. 내가 나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인데 누구를 구할 수 있나. 내 몸이 불타고 있는 데 누구의 불을 꺼줄 수 있나. 조 베일러(제이크 질렌할)는 당장이라도 안구와 근육, 뇌신경과 안면이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타인의 급박한 상황에 대처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먼저 살아야 할 사람은 남이 아니라 나였다.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에 의지하게 된다. 숙지한 매뉴얼 외에 기민한 상황 파악력과 신속한 대응이 동반되어야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납치된 여자, 홀로 있는 아이들, 칼을 들었다는 남자, 집에서 먼 곳으로 질주하는 차량, 구해달라는 전화, 조는 여자의 상황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당신을 구해야 최소한 내 삶을 용서할 수 있을 거 같아. 당신이라도 구해야 내 죄가 조금이라도 경감될 거 같아. 오로지 전화로만 모든 세부사항을 통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의무를 앞서는 진심은 없다. 다들 해야 할 일들이니까 제자리에서 자기 몫을 할 뿐, 모든 에너지를 걸고 한 건수에 매달리지 않는다. 깊이 내재된 수동성이 조의 다급한 요청을 귀찮다고 여긴다. 너 말고도 여기 다급한 사람 천지야.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조는 자기 일이 세상 제일 중요하고 급하다. 고성과 폭언, 욕설이 난무한다. 내 판단이 옳으니까 당장 인력 보내서 사람 구해 와! 조의 주 업무는 911 신고 접수가 아니었다. 좀 더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명을 구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이었다. 


조의 죄가 여기까지 조를 끌고 왔다. 납치 구조 전화를 받게 하고 모든 인프라를 총동원해 여성과 아이들을 구하게 만들었다. 학습된 편견으로 한 남성을 가해자로 몰아세웠다. 조도 그러한 상황이었나. 죽이려고 죽인 게 아니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결과가 죽음에 이른 거야. 난 무고해. 난 경찰의 의무를 다하려고 했을 뿐이야. 책임감 있게 대응하고 해결하려 했을 뿐이야. 난 그럴 의도가 없었어. 왜 내 가정이 파괴되어야 해. 왜 내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야 해. 왜 내가 지옥불에서 절규하고 있어야 해. 왜 내가 사랑하는 딸의 목소리도 제대로 못 듣고 이런 비참한 신세가 되어야 해. 거짓말을 해서 상황을 되돌릴 수 있을 거야. 이 긴 어둠에서 벗어나야 만 해. 난 억울해. 아니... 내가 정말 그때 사악한 가해의 의도를 가졌을까. 진짜 죽이려 했던 걸까. 경찰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죄 여부가 불확실한 상대를 제압하며 과잉 대응을 한 건가. 나는 지금 누구를 의심하고 있나. 8개월 전처럼 또 덮어놓고 한쪽을 몰아세우며 심증만으로 범인을 만들고 있지는 않나. 또 다른 희생을 유도하고 있지는 않나. 


조는 자신이 무조건 옳다는 판단을 내려놓고 진실과 마주한 후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자신의 오판으로 사상자가 발생했고 사상자 명단에는 자신의 삶도 있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고 연결된 사람들이 함께 다쳐야 했다. 목숨을 구하는 일만큼이나 잘못의 적법한 대가를 치르는 일이 중요한 곳이 존이 속한 세계였다.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않고 상처의 회복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과정을 간과하고 은폐와 망각에 급급하다면 또 다른 집이 불타고 또 다른 폭력이 발생하며 또 다른 피를 부르게 될 것이다. 존은 멈춰야 했다. 타인의 죄를 추궁하기 전 자신의 죄를 씻고 와야 했다. 검은 연기와 불길이 뒤덮은 상황에서도 세상은 돌아간다. 존이 없는 세상도 별일 없이 돌아갈 것이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사람들과 구해줄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구원의 목소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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