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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l 28. 2021

블러드 레드 스카이, 흡혈귀 VS 살인귀

피터 쏘워드 감독. 블러드 레드 스카이

다 통제되고 있으니 걱정마세요!


살인귀 패거리들이 비행기 테러를 대학살극으로 진행 중일 때 나자(페리 바우마이스터)는 이미 죽어 있었다. 심장을 완전히 부수지 않는 이상 어떤 화력으로도 나자를 죽일 수 없어서 나자는 자꾸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사람 같지 않은 생명체가 자기들 외에 또 있다는 사실에 패거리들은 당황한다. 소스라치기도 전에 목덜미를 뜯기며 하나둘 눈을 감는다. 다른 점이라면 패거리들은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며 탐욕을 위해 닥치는 대로 살육을 저질렀지만 나디아의 광기는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이다. 나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통제불능 상태였다. 조상이 펜실베이니아 출신도 아닌데 임신과 출산의 후유증으로 그렇게 된 것도 아닌데 나자는 억제제를 제때 주사하지 않으면 사지가 뒤틀리며 피에 굶주린 이빨을 드러내야 했다. 흉측한 짐승의 형상으로 으르렁거려야 했다. 흡혈귀의 본성으로만 살아남아야 했다면 차라리 쉬웠을 것이다. 좀 지나치게 거슬리거나 너무 배고프면 다 해치워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나자는 인간계에서 아니 생명체 카테고리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엄마였다. 자식이 소리 지르면 제 아무리 흡혈귀 대할머니라도 모든 행동을 멈추고 눈물이 뚝뚝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흡혈귀 나자는 평범한 인간인척 하며 눈에 안 띄고 조용히 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식과 테러범 개새끼들이 가만 놔두질 않았다. 두 극단 사이에서 나자는 비행기 내부를 핏물로 가득 채운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테러범 패거리 중에서도 에이트볼(알렉산더 셰어)은 개싸이코였다. 동료들이 다들 돈 벌려고 비행기 훔치고 사람들 겁주는 고된 업무 중에서도 에이트볼은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으려 애썼다. 종종 19금 범죄 액션 영화에는 살인과 폭력을 목적을 위한 필요악이 아닌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삼는 애들이 등장하는데 에이트볼이 특히 그런 캐릭터였다. 범죄현장을 마치 일터가 아닌 관객과 조명이 가득한 무대로 보는 사이코패스. 그에게 살인은 내가 이렇게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해 라고 만인에게 증명하는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조커를 얼마나 섬기는지 측정할 수 없지만 타인의 피와 살점에 흠뻑 젖을 때마다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어쩔 줄을 모른다. 그에게 비행기 테러는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운 애들한테 알아서 날뛰라며 트램펄린을 가져다준 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자의 존재는 치트키와도 같았다. 전직과 영생 장착, 저 아이템을 얻는 순간 최고 능력치로 각성해 살육 게임을 무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에이트볼은 나자의 피를 훔친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는 나자에게 종족 번식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도 저 미친 보스몹을 필사적으로 막아야 했다. 


엘리아스(카를 코흐)의 역할은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가족이고 어른이고 다 미친 지옥이 된 마당에 엘리아스라도 제정신 차리고 생존을 도모해야 했다. 엄마 나자의 방지턱이 아닌 부스터가 되기 위해 목이 터져라 엄마를 불러야 했다. 아이와 자식이라는 이유로 한없는 보살핌의 대상이 되어야 했지만 같은 이유로 나자를 각성시키고 거대 악귀에 맞서게 만들었다. 가장 방어력이 낮았지만 가장 기민하게 움직이며 상황을 연결시킬 수 있었고 엘리아스가 있어서 블러드 레드 스카이는 단순히 안타까운 비행기 사고 이야기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불가항력으로 가득 채워진 비행기 안에서 엘리아스는 엄마에게 생존의 명분을 끊임없이 제공하며 뛰어난 조력자이자 끝내기 홈런을 날리는 플레이어로 활약한다. 그는 희생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 죽어가는 엄마에게 자신의 피를 주었을 때 그의 지위는 조연에서 주연으로, 동료에서 코치가 되었다. 나자도 이제 그만 눈감고 쉬고 싶었겠지만 사력을 다하는 자식 곁에서 멈출 수 없었다. 엄마의 피 속에서 태어난 자식은 자신의 피를 되돌려 먹이며 의미 있는 상생 관계를 구축한다. 나자는 직감했을 것이다. 자신이 완전히 죽어야 이 게임에서 엘리아스를 최후의 승리자로 만들 수 있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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