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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Feb 05. 2021

블랙 미러, 포르노 판타지의 진화

오웬 헤리스 감독. 블랙 미러 시즌5: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흑인 남성 둘이 온라인 격투 게임 중 가상 성관계를 한다. 각자의 캐릭터는 여자 VS 남자였다. 매트릭스처럼 뒤통수에 대형 전선을 꽂은 건 아니지만 둘은 작은 칩을 피부에 부착하는 것만으로도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었다. 애초 로그인 목적과 결과가 달랐을 뿐이다. 물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공간에 있지만 가상현실에서는 싸이버 펑크 도시, 대자연, 뒷골목 등 어디든 원하는 곳에서 함께 싸울, 아니 욕정을 나눌 수 있었다. 작정하고 시작한 게 아니니 당황한 건 둘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문틈에 발가락 넣는 게 처음에만 어색하지 나중엔 문 여는 건 일도 아니다. 각각 여자 친구와 안정적인 가정이 있던 그들은 야심한 새벽 로그인하기 바쁘다. 실존하지도 않는 공간에서 실존하지도 않는 육체와 숨소리, 땀과 열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이 괴리감, 반복적이고 무미건조한 직장생활, 임신 계획으로 아내와의 의무적인 성관계, 관심과 라이프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세대 차이 등 -인종 차별을 어렵게 언급하지 않더라도- 나이 든 남성이라는 이유로 둘이 도망칠 이유는 많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도망칠 이유로 만든다. 그렇게 다시 로그인한다. 더할 나위 없는 쾌락을 맛본다. 친구와 가상섹스에 빠져 있는 동안 현실의 삶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럭저럭 먹고살만한 현실 세계를 이뤘어도 가상섹스의 쾌락과 환각에만 빠져 지낼 순 없다. 정상적인 가족에게 이런 구성원은 불필요하다. 대니(안소니 마키)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했다. 보통의 할리우드식 결말이라면 -그토록 스토리텔링에서 못 잃어서 안달복달하는- 가족의 관계를 회복하고 사랑을 되찾으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갔을 것이다. 대니는 어느 것도 잃지 않는다. 대니가 해소한 욕망이 대니의 아내 테오(니콜 비하리)의 욕망으로 확장되었을 뿐이다. 블랙 미러 시즌5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백인이 참여하지 않는 근미래 SF를 그린다. 흑인 남성들이 아시아 여성과 남성의 캐릭터를 플레이하고 격투 게임을 넘어 가상섹스를 통해 우정을 초월한 성애를 느낀다. 정리하면 흑인 남성이 아시아 캐릭터를 통해 경험하는 가상의 동성애 아니 이성애랄까. 아내, 아이, 가정, 가족 등은 새롭게 발견한 개인의 쾌락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경계로 등장한다. 30대 후반이면 지금 가진 걸 다 포기할 정도로 무모하진 않을 테니까. 주인공은 현실에 가까운 타협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중독성을 지닌 VR 게임이 실제로 일상의 거실까지 진입한다면 가족을 분열시키는 정도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사실 콘텐츠의 속성만 다를 뿐 이미 진행 중이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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