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56년생이다. 아빠가 40대일 때 나는 20대였다. 어느덧 내 곁엔 아내와 아이가 있고 아빠 곁엔 엄마만 있다. 기억만으로 추산하면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은 다 합쳐 대략 15년 정도다. 물론 그가 내 아빠가 된 시간은 서류 상으로 이치 상으로 생물학적으로 내 나이와 같겠지만 최대한 한 공간 안에서 동선이 겹쳤던 시간은 15년 이하다. 연수로만 측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앞가림 못하던 시절에 그의 역할과 존재감은 내 삶에 절대적이어야 했으니까. 요즘은 먼저 자주 전화를 거신다. 나이 든 그의 쓸쓸함을 감지한 지는 오래되었다. 내가 정서적인 궁핍에 시달리고 의지가 필요했던, 부모라는 연결된 혈육, 아는 어른, 뭐라도 말할 대상이 필요했을 적엔 주로 거의 내가 먼저 그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가끔이라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연애, 결혼, 출산, 육아 등이 나에게 새로운 신분과 역할을 가져다줬고 취직과 이직, 이사와 고정된 거주지 등이 안정을 가져다줬다. 전에는 전화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사회생활의 부조리와 고충에 대해 마구 이야기하기도 했다. 회사를 다닌 역사 없이 평생 흙과 바람, 눈비와 추위, 태양과 이슬, 줄기, 뿌리, 열매, 과실, 수정, 수확 등의 요소들을 조율하며 자신의 영토 안에서 생계를 스스로 해결한 그에게 내 토로는 짐작은 가지만 겪어보질 않았으니 와닿을 수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중간중간 내 성취와 성과에 대해 내비치며 인정을 유도하기도 했지만 그는 간파하지 못했다. 딱히 아쉽지는 않다. 한결같아서.
오늘 통화에서 그는 조금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며느리로서 시댁에 헌신하는 흔들림 없는 태도를 견지하는 아내에 대해 이야기했다. 딱히 소재가 없었는데 마침 아내에 대한 그의 긴 칭찬을 접수했고,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빙산의 곰 발자국 정도이며 내가 좀 더 알려주고 싶은 것들에 대해 전달했다. 그는 조금 당황했다. 우리의 이번 대화는 배틀이 아니었지만 그는 기습을 당한 듯 멈칫거렸다. 나는 그가 몰랐던 그리고 알아야 하는 그리고 절대 당연하지 않은 태고적부터 이어온 아내의 배려와 헌신, 정성과 그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에 대해 평소보다 길게 이야기했다. 그는 같이 나이 들어가는 부자간의 스몰토크에서 시댁의 무심함을 돌려 말하며 질타하는 필리버스터가 된 상황에 어쩔 줄 몰라했고 내 발언권을 제지하려 했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알아야 했다. 시아버지로서. 아들과 사는 여성이 이토록 가정의 평화와 번영에 절대적인 비중으로 시간의 틈을 허용하지 않은 채 헌신하고 있다는 점을. 얼마든지 다시 말할 수 있지만 이건 결코 모든 며느리의 의무가 아니며 시댁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집안의 어른으로서 그저 마음으로 알아주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금전과 재화의 오고 감이 결국 서로를 알아주는 중요한 방식 중에 하나라는 점을. 그는 분명 말과 목소리로만 이뤄진 칭찬으로 값을 치렀다고 여겼을 것이다. 어른으로서 이 정도면 된 거 아니냐고. 나는 아니라고 했다. 우리의 이번 통화는 부드럽게 마무리되었고 그가 바뀌지 않을 거란 걸 안다. 하지만 그는 알아야 했다. 아들이 좋은 사람과 결혼한 것을 인정하듯 그대들이 얼마나 대단한 며느리에게 10년도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받고 누리고 있는지. 이게 얼마나 한 가족을 따스하고 견고하고 단단하게 지켜주고 있는지. "올 연말, 늘 아가라고 부르시는 며느리에게 서프라이즈 현금을 선물로 건네시는 건 어떨까요?"라는 말은 차마 못 했다. 전에 한 적 있었고 딱히 바뀌지 않아서. 다음에도 이런 주제로 또 이야길 나누고 싶다. 그에겐 이런 방식으로 부모를 등진 아들로 인식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