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야설에서 살아남는 법

박찬욱 감독. 아가씨

by 백승권



욕망의 격돌.

히데코(김민희)는 폭력과 공포에 평생 억눌려 있었다. 숙희(김태리)는 독립을 위해 한탕을 위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백작(하정우) 역시 한탕을 위한 설계자로서 모든 판을 직접 주도하려 했고 코우즈키(조진웅)는 희귀 야설 수집을 위한 부를 쌓는 데 남은 인생을 할애하고 있었다.


사연은 각자 달랐지만 네 사람 모두 자신이 가장 영리하다 믿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예측불허의 상황에 적응한 둘만이 살아남았다. 넷 다 생존 이상의 것을 꿈꿨지만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목적을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황에 적응한 둘은 히데코와 숙희였다. 둘은 애초 서로를 속이고 있었고 서로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실제로 한쪽은 자신이 속이면서도 속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둘 다 몰랐던, 애초 예측하지 못 했던 부분은 감정. 서로를 만나기 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고 서로와 말을 섞고 육체를 만지기 시작하면서 변수는 타오르기 시작한다. 속지 않고 반드시 속이고 말겠다는 의지에 제동이 걸린다. 그리고 실제로 상대방도 자신과 같은 고민에 휩싸여 있는지 궁금해한다. 히데코가 눈물을 그렁거리며 질문을 던진 후 숙희의 실망스러운 답변을 얻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보호자가 목을 매달았던 나무에서 같은 방식의 죽음을 택하려 몸을 던진다.


숙희는 그 순간부터 판의 일부가 아닌 중심으로 이동한다. 욕망의 꼭두각시가 아닌 선택의 주체로 오른다. 히데코와 완전한 신뢰를 공유하고 기꺼이 정신병원에 투옥된다. 히데코 역시 자신을 옭아 매던 그물을 하나둘 끊기 시작한다. 변태적 픽션을 낭독하며 성적 판타지의 대상이 되던 긴 세월을 뒤로하고 숙희와 함께 소녀의 탈을 벗어 던지기로 한다. 자신의 재산을 탐하고 그 재산을 다시 탐하던 사내들의 손아귀에서 멀리 벗어나기로 한다.


히데코와 숙희는 협력관계가 되어 게임에서 앞서 나갔고 백작과 코우즈키는 서로의 민낯이 드러난 순간,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관계로 변질된다. 코우즈키가 파손된 장서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백작의 (물건을 거세하듯) 손가락을 차례차례 자르고 ('처녀'를 정복하려 했던 꿈을 대리만족하듯) 드릴나사로 손바닥을 찢어 관통하던 장면. 둘은 의외의 지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야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못 다 이룬 욕망을 해소한다. 환상 속 마지막 교미를 나누며 타살과 자살에 다다른다. 그렇게 수컷들은 패배한다. 끝까지 자지를 잃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처음부터 너무 많이 가졌거나 너무 많이 가지려 해서 언제 파멸해도 이상하지 않은 네 인물의 공통분모를 떠올려 본다. 야설. 한 명은 야설을 수집하고 한 명은 야설을 들려주고 한 명은 야설 속에 자신을 투영하며 한 명은 야설 속 행위를 실행한다. 한 명에게 야설은 현재와 미래의 자산이자 삶의 동력이었고 한 명에게 야설은 지긋지긋한 일과 중 하나이자 강요와 학대 행위의 중심이었으며 한 명에게 야설은 연모하게 된 여인과 꿈꾸는 쾌락의 서사였고 한 명에게 야설은 사랑에 빠진 여인을 속박했던 변태적 폐기물이었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읽히고 재해석 되며 애호가들에게 추앙받을 수 있는 사드풍 '작품'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주변의 인간을 부속품이자 퇴폐적 환상을 위한 매개물로 전락시키는 음란물에 불과했다. 계급의 중심에 있었고 어떻게 활용하고 활용되느냐에 따라 호오가 갈렸다. 야설의 기승전결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지만 영화가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점은 흥미롭다.


박찬욱 감독 영화에서 아가씨처럼 상대적 약자들에게 승리를 안기는 작품이 있었나 싶다. 처절한 복수를 이행했던 친절한 금자씨조차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했는데. 스스로 목숨을 던지거나 한낮에 자신의 배를 가르거나 타인의 장기를 적출하거나 물속에서 아킬레스건을 끊거나 목에 송곳을 꽂거나 색종이 가위를 뒤통수에 쑤셔 넣거나 모든 공간에 피칠갑을 하거나 일출에 타올라 온몸이 재가 되거나 이런 (기존작들에서 선보였던) 잔인한 묘사에 대한 연출이 다소 적어 (기대했던) 파격적인 이미지를 남기는 것에 비중을 두지는 않더라도 아가씨와 하녀의 이야기는 여운이 적다. 선인이 안정을 찾고 악인이 벌을 받는 듯한 엔딩으로 보여서 그런가 보다.


수컷들이 음미하던 방울소리. 그녀들은 정말 벗어나긴 한 걸까.





박찬욱 감독과 그가 영향을 미친 영화에 대한 끝없는 찬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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