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원 감독. 소통과 거짓말
해석의 여지가 없거나 너무 비좁다. 슬프고 아픈 사람들의 기행과 만행을 다룬 이야기인데, 슬프고 아프게 된 사람들이라는 걸 알기까지가 괴롭고 불편하다. 물론 괴롭고 불편한 영화는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관심과 몰입을 얻지만, 소통과 거짓말의 괴로움과 불편은 자주 (나라는 개인에게 한정된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다. (누군가에겐 또는 의도적으로) 예술적 예술가적 시도, 실험, 대담함과 현실적 표현, 재연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세계관을 벗어난 타인의 세계관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용 가능하다면 수용자의 세계관을 벗어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불일치에 대해 길게 적는 이유는 배우들(장선, 김선영)의 연기 때문일 것이다. 소통과 거짓말은 기이하게도 이야기가 아닌 영화가 선택한 전달 방식에 대해 더 많이 언급하게 된다. 이건 해석의 여지가 막혔기 때문일 것이다. 연기로 인식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연기는 어느 지점에서 주로 멈추는데 이 영화에서는 멈추지 않는다. 계속 노출이 이어지고 보는 이는 멈춰주길 빌거나 어서 빨리 지나가 달라고 빌게 된다. 전혀 다른 형질의 물질처럼 느껴졌다. 마치 채널을 돌리고 싶은 참담한 뉴스처럼. 이런 소재가 이렇게 다뤄지는 게 불편하다. 이렇게 다루지 않았던 수많은 영화들에 의해 (내가) 학습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영화들에게 (이런 소재가) 이렇게 다뤄지지 않은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소재를 다루는 영화들이 모두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처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런 전달 방식의 슬픔과 고통은 낯설고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