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룩 업, 마이클 베이와 브루스 윌리스 없는 종말

아담 맥케이 감독. 돈 룩 업

by 백승권

1998년 아마겟돈이 개봉했다. 브루스 윌리스 죽을 때 전 인류도 같이 울었다. 그때만 해도 마이클 베이는 숀 코너리와 니콜라스 케이지의 더 록을 만든 감동(내 생각) 액션 거장이었다. 더 록에 아마겟돈까지 더해지자 마이클 베이는 헐리웃이 낳고 전 세계가 열광한 신생 절대 권력처럼 느껴졌다. 아마겟돈을 이후로도 여러 번 봤고 볼 때마다 감탄했다. 아버지 제끼고 구사일생 돌아온 남친 벤 애플렉을 끌어안는 리브 타일러의 빠른 태세 전환이 늘 마음 한켠 유교랜드 태생의 심리를 자극하긴 했지만 계속 보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이게 다 딸 남친을 샷건으로 쏴 죽이려 했던 아비 브루스 윌리스의 업보인가 생각도 들었다. 날아오는 행성에 우주선 발사 및 착륙시켜서 폭탄 설치하고 쾅하면 지구 구원이라는 이론도 생경하고 굉장해 보였다. 저렇게 멸망 위기의 지구를 구한다고? 캬... 역시 미국(?)은 대단하네!(아님) 착륙한 행성에서 겪는 갈등도 흥미진진했다. 파고 파고 또 파니 살길이 생기더라. 그 깊고 진한 어둠 속에서 땀과 돌가루 섞인 긴장감. 그 사이 지구의 모든 종교와 산들바다도시의 전 인류는 행성과 대원들이 있는 하늘만 '룩 업(Look up, look up (someone or something))'만 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리고 펑펑펑. 지구로 날아오던 행성은 터진다. 브루스 윌리스의 위대한 희생과 함께. 20년도 더 지난 2021년 아담 맥케이 감독의 돈 룩 업(Don't Look Up)이 넷플릭스에서 개봉한다.


브루스 윌리스는 안 보인다. 대신 돌진하는 행성(보다 작지만 에베레스트 산만한 혜성)이 다시 나온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인종 구성이 다양해졌다. 다양함을 넘어 차별 관련 이즘에 대한 조소하는 밈을 표방한 뉘앙스의 장면들도 자주 보인다.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가 발견하고 천문학자 랜들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재확인한다. 처음엔 새로운 발견이라며 최초 발견자의 이름 붙이며 파티를 열지만 곧 지구를 날려버릴 행성 파괴자라는 걸 알고 경악한다. 그다음엔 예상대로다. 종말이 도래했다. 어서 브루스 윌리스를... 아니 그는 정년 내내 지구와 뉴욕을 지키느라 지쳤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가 있지만 근육은 없고 지식과 열정만 있어서, 무엇보다 자본과 권력이 없어서 전혀 전 인류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다. 아무도 하늘을 쳐다보며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관심을 갖지 않는다. 대선 이슈가 다른 데 관심을 돌리도록 놔두지 않는다. 미디어 세뇌는 생존권마저 차단시킨다. 오직 밈들만이 바이러스나 포자처럼 자생하고 퍼지다 소멸하다 다시 변종으로 재생산될 뿐이다. 인류를 날려버릴 파괴자를 발견한 자가 가리킨 곳보다 발견자가 열폭하는 이미지를 꾸미고 퍼다 나르기 바쁘다. 인류는 농담을 나누다가 죽을 것이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라고 약과 술에 취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며.


돈 룩 업은 종말이 오기 전부터 이미 종말 해버린 듯한 미국 중심 인류의 풍경의 이미지로 융단 폭격한다. 온통 웃음거리로 도배한다. 이걸 보라며 진열한다. 까도 까도 깔 것들이 계속 깔린다. 뉴욕타임스(다른 이름으로 등장)로 막지 못한다. 무력과 광기가 뒤섞인다. 뒤늦게 아차 싶지만 이미 하늘엔 종말이 떠 있다. 전 세계의 리더들이 그렇게 합동으로 멍청할까 싶지만 감독은 일단 미국의 혼돈과 참상을 집중 부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최후의 날이 닥치면... 이렇게 될 거 같지 않냐라고 말하듯이. (권력 없는) 여성과 흑인은 마지막까지 주류에 편입조차 되지 못한다. 그들이 나란히 앉았던 뉴스쇼는 대환장쇼였고 그들의 최후에도 그저 둘만 있었을 뿐이었다. 이미지의 소비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백인 남자의 어떤 평균치처럼 보였던 랜들 민디도 다르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 아들이자 양아치, 약쟁이로 나온 제이슨 올리언(조나 힐) 보다 그렇게 나은가. 랜들 민디는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혼란을 가중시키며 희망과 대안을 지체시켰고 바람이라는 기행마저 더하며 혜성보다 더 빠르게 추락하며 아내 준 민디(멜라니 린스키)를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그에게 평화로운 종말은 지나친 배려처럼 보였다. 영화는 그를 용서하기 위한 에피소드를 다수에 배치한다.


혜성 폭발 시도는 실패한다. 수십 조라는 자원 이익 앞에 계획은 변경된다. 물론 폭발 성공률도 높지 않았지만 변경된 계획으로 인간은 다시 한번 팀 쿡을 연상시키는 자본가(겸 대선 후원자) 피터(마크 라이런스)로 인해 구원의 기회를 상실한다. 지식인들과 민간단체는 항의한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차피 최상위 극소수는 최악의 경우에도 생존할 수 있는 최선의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제 지구는 어떡하나. 마블 시리즈 피겨들은 뭐 하고 있나. 캡틴 마블과 닥터 스트레인지는 휴일인가. 영웅 없는 인간들은 방향을 잃고 마지막 식사를 나눈다. 그들의 떨리는 목소리에 담긴 진심 어린 토로들이 끝날 즈음... 초록색 선을 자르거나 빨간 버튼을 누르거나 이런 장면과 함께 아시아 중동 유럽 아프리 남북극 등등의 인류들이 함께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들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지구는 셔터를 내린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처량한가. 끝나기 전에 끝내지 않으면 끝난 거다 라는 말로 바꿔야 하지 않나.


액션과 감동이 적다고 돈 룩 업을 저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애국가 배경화면 같은 장면들과 밈을 좀 더 다르게 쓸 필요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제이슨이 버림받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 엄마(메릴 스트립)는 돈 많은 흰머리들과 다른 우주로 황급히 떠나고 홀로 남아 어쩔 줄 몰라하던 표정. 다시 버림받은 것에 대한 충격인지 처음 버림받은 것에 대한 혼란인지 그는 마약과 권력에 취해 인스타그램 명품 자랑처럼 돌대가리 개소리만 지껄이다가 미아가 된다. 아마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될지도 모를 미국인의 초상일 것이다. 물론 외로워도 외롭지 않아도 혼자 있어도 여럿이 있어도 종말은 모두 겪고 겪으면 모두 죽는다. 이걸 알고 있을 만큼 그(제이슨, 또는 그와 같은 미국인들)가 생각이란 걸 하며 살진 않았을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