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없이, 아동 유괴의 50가지 그림자

홍의정 감독. 소리도 없이

by 백승권

배초희(문승아)는 잘못 유괴된다. 말은 안 되지만 그렇다. 소리도 없이의 수많은 장면들이 잘못 유괴라는 말처럼 표현된다. 삼대독자를 납치하려고 했는데 잘못 유괴되었다. 그 유괴 역시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 하에 시작된 게 아니었다. 범죄 조직 중간 관리자의 사적인 목적으로 시작되었고 틀어졌다. 중간 관리자는 잘못과 잘못 유괴 등의 책임을 져야 했다. 그들의 평소 업무 처리 방식처럼 공간의 천장에 매단 후에 피가 많이 흐르고 타격 소음이 강한 물리적 폭력 절차를 거친 후 중간 관리자는 사망한다. 중간 관리자의 평소 업무(폭력 교사로 인한 살인) 중 사망자 처리를 외주로 맡고 있던 두 명이 있다.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이다.


태인은 언어구사력이 매우 미약하다. 주로 사체를 들어 옮기거나 땅에 파묻는 근력을 쓰는 일을 맡는다. 창복은 일의 수주와 진행, 소통을 맡는다. 늘 웃는 인상에 깍듯한 예의를 갖추고 있어 클라이언트인 범죄조직 단원들에게 신임이 높다. 중간관리자는 창복과 태인의 주 거래처 담당자였는데 사망해서 좀 난감해졌다. 배초희를 맡겨놓았기 때문이다. 원래 다음 외주처로 넘겨서 협박을 통한 요청 금액 지불 및 유괴 당사자 반환이 이뤄지면 되는 거였다. 이 과정이 경찰 개입 없이 이뤄지면 수수료 삼백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이자 총괄 책임자였던 중간 관리자가 조직 내 규율 위반으로 적발되고 사망'하신' 것이다. 예상하진 못했지만 창복이 우려하던 고난이었다. 창복은 수습을 위해 다른 외주처와 소통하고 무리한 추가 업무 요구에 대응하던 중 사망한다. 배초희와 태인이 남게 된다.


배초희는 울지 않는다. 자신의 현 상황을 날카롭고 건조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창복과 태인의 대화를 듣고 사체 처리 과정을 주시하며 냉정하게 정보를 수집한다. 1차 도주 시도가 실패하고 태인과 동거 기간이 늘어난다. 딸린 식구가 하나 있던 태인에겐 (어린아이인 초희를 업무적으로 주고받아야 하는 게) 난감하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 창복이 가르치고 키웠다는 태인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낯설었다. 외딴 시골 쓰레기통 같은 방에서 짐승처럼 먹고 잤는데 초희가 오자 문명의 태양볕이 밝고 따스히 드리운다. 대안 가정의 구조를 갖추게 된다. 공익 광고의 이미지 가족처럼 햇볕 아래서 뛰놀고 같이 빨래하고 음식을 나누고 사진도 찍는다. 초희는 원래 가족과 이런 시간을 보낸 적이 없어 보였다. 보랏빛 하늘이 펼쳐진 청명한 시골 마을에서 유괴범 가족과 유괴된 아이가 만드는 기괴한 인스타 감성. 파괴 절차가 뒤따른다. 정해진 유괴 절차에 따라 초희를 인계받은 다음 외주처 담당자는 술을 탄 주스를 먹이고 죽은 자의 옷을 빨아 입은 태인은 달리는 차에 뛰어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태인은 애초 유괴된 아이가 아니었을까. 태인을 오빠라 부르던 아이도 창복이 유괴에 관여한 후 태인에게 떠맡긴 아이는 아니었을까. 창복이 거래하던 자들은 악귀의 표피를 뒤집어쓴 자들이 아니었다.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오랜 경험에서 녹아든 비즈니스 매너와 한국식 친근함, 익숙한 피로와 짜증이 묻어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오가며 진행하는 유괴는 어떤 비즈니스와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금전적 이익이라는 목적 아래 각자의 리스크를 부담하고 끊임없이 소통하고 긍정적인 관계 유지에 힘썼다. (초희 가족들에 대한 묘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에) 유괴하면 흔히 뒤따르는 죄책감, 분노, 침울함, 오열 등의 격한 감정적 요소 역시 배제되어 있었다. 한없이 평온한 가해자들의 세계. 초희는 돌아가고 싶었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기도 했다. 여기서는 물건이었고 저기서는 천대받는 딸이었다. 태인은 도망치고 선생님과 엄마는 달려오고 있었지만 초희는 웃을 수 없었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초희의 제자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