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 난 슬프면 저글링을 해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 신의 손

by 백승권

푸르고 눈부신 점심이었다. 모두가 모였다. 매일 같이 마주하는 이웃들, 노부부와 장성한 두 아들, 나폴리까지 먼길을 달려오는 나이 차 많은 커플, 미니 마이크가 있어야 목소리가 들리는 노인, 끝없는 농담과 지칠 줄 모르는 웃음들, 독설과 까르르르 어쩔 줄 모르는 주름 나부끼는 표정들, 만인이 꿈꾸는 천국이 실존한다면 이와 가깝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거기엔 무해한 활기가 넘쳤고 의심스러운 긴장은 그림자를 감추고 있었다. 한 여성이 살랑거리며 자신감 있는 포즈로 노랗고 작은 과일들을 공중에 띄웠고 세 개의 과일들이 여성의 손에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들의 엄마였던 그 여성의 손에서 공중에서 돌고 돌고 돌며 원을 그리고 떨어질 줄 몰랐다. 마치 가장 소중한 세 명을 절대로 잃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었을까. 여성의 온 얼굴이 웃고 있었고 이를 지켜보는 모두가 탄성을 나지르고 있었다. 난 이 장면을 처음 보고 있을 때만 해도 놀라운 행복감이 이들을 둘러싼 공기와 볕의 전부인 줄 알았다. 누구나 사연은 있지만 이 사람들에겐 그리 놀라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탈리아의 바닷가 마을에 수백 곳의 천국이 지어졌다면 이들이 있는 곳이 그중 하나일 것 같았다. 저글링을 하던 저 여성은 천국의 광대일 것만 같았다. 모두를 즐겁게 하고 스스로도 만족감이 넘치는. 남편과 사랑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 없는 눈빛과 미소를 끊임없이 주고받는 저 여성에게 어둠이 기댈 곳은 고통과 슬픔의 의자는 없을 것만 같았다. 어느 날 밤 진실이 울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진실은 천국이라는 오해를 그 여성의 눈물로 지우고 있었다. 부부는 반복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소재를 가지고 오랫동안 서로에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닫힌 문 밖에서 두 아들은 말이 없었고 문 안의 노부부는 타협에 이르지 못했다. 성난 노인(토니 세르빌로)이 집을 비우고 여성 홀로 빈 방의 어둠에 남겨졌을 때, 아들은 그때 마른 여성(테레사 사포난젤로)의 뒷모습을 본다. 저글링을 하는 여성의 뒷모습을. 저글링을 너무 잘해서 절대 물체를 떨어뜨리지 않는 여성의 뒷모습을 본다. 주워 담을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온통 얼굴에 묻히고 눈물에 익사하고 있는 여성의 뒷모습을 본다. 난 그때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구는 슬플 때 힙합을 춘다(feat. 언플러그드 보이)는데 저 여성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앓을 때마다 저글링을 했구나. 저렇게 잘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얼마나 많은 배신감과 무력감을 느꼈을까. 집을 나간 사랑을 기다렸을까. 버리지 못하는 남자를 사랑했을까. 숨기고 숨었을까. 비극이 저렇게 장기자랑이 될 때까지. 얼마나 지금 이 지옥이 농담처럼 지나고 잊히길 바랬을까. 어깨를 떨었을까. 마른 손으로 가슴을 때렸을까.


노부부는 한 곳에서 고요히 눈을 감는다. 남성의 고개가 말없이 떨어지고 여성의 머리가 남성의 어깨에 기댄다. 이 부부의 서사는 이 영화에서 일부였지만 따로 떼어놓고 독립성을 부여한다면 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 못지않았다. 특히 여성의 손에서 뛰놀던 낮과 밤의 저글링은 온도차가 심해와 달 표면 사이처럼 아득했다. 사랑은 배신하고 인생은 아무도 모르며 끝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감히 정의할 수 없고 의미를 단정 지을 수 없으며 행복을 재량할 수 없다. 타인의 삶들이 그렇다면, 어쩌면, 내 삶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