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군 구미코 / 그림 구로이 켄 / 옮김 고향옥
산골에서 작은 치과를 운영하는 의사가 있었다. 눈 오던 밤 다람쥐 가족의 대화를 듣고 깨진 앞니를 치료해준다. 진료비를 거절했지만 호두, 밤, 도토리 등을 계속 주고 싶다길래 다른 제안을 한다. 편지를 써달라고. 인간이 다람쥐 치아를 고쳐주고 편지를 써달라고 하다니. 거래는 성사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동물 이빨 잘 고친다는 소문이 퍼져 멧돼지, 너구리, 여우, 곰 등등이 줄을 섰고 의사는 그들에게 모두 편지 작성을 맡기며 진료비를 대신했다. 의사는 편지를 부치러 가며 우체통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보낸 편지가 과자와 과일로 돌아올 때 동물들과 나누었다. 어느 밤, 의사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쓴 후 우체통에 넣었다. 며칠 후 우체통이 의사를 찾아오고 둘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우체통은 의사에게 입을 벌리더니 아버지를 보여준다. 의사는 눈물을 참았고 정신을 차리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작품에서 남성에게 마이크를 주지 않기로 유명하니 이 동화를 만약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으로 옮긴다면 등장 인간의 성별을 바꿔도 될 것 같았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성인 여성으로. 산, 밤, 눈을 배경으로 동물과 깊고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판타지가 더해지며 위트와 감동 어느 것도 놓치지 않게 된다. 전문적인 의술은 익혔지만 여전히 아빠를 그리는 여린 소년으로부터 자신을 분리 및 성장시키지 못한 한 어른 인간의 이야기. 부모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이상, 자식이라는 지위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이상, 의사는 앞으로도 숲 속의 동물 고객들에게 편지 대리 작성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이런 행위는 결국 멀어져 가는 부모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과 아쉬움을 전하기 위한 의식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