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만약......

존 버닝햄 글그림 / 이상희 옮김

by Glenn

어른이 아이들을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른이라면 나이와 경험을 가늠하여 상식적인 반응을 유추하고 대응할 수 있지만 아이는 다르다. 아이는 상식이 없다. 아이는 경험이 없다. 아이는 뭔가 있지만 그걸 어른은 모른다. 그걸 몰라서 어른은 아이의 생각을 예측하지 못하고 아이의 말을 예측하지 못하고 아이의 행동과 마주한다. 놀라고 당황하고 충격받기도 한다. 존 버닝햄의 네가 만약을...... 처음 읽었을 때 아 이건 어른과 다른 아이의 생각을 그리고 써놓았구나라고 느낀 건 절대 아니었다. 경악했다. 생각을 옮겨놓는 방식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구상과 계획은 접근성이 비교적 낮지만 이걸 글과 그림의 표현 영역으로 옮기는 건 이 결과물을 독자에게 파장을 일으키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자 고밀도의 노력이 들어간다. 존 버닝햄은 이런 관점에서 비견의 대상을 찾기 어려운 작가다. 돼지가 아이의 옷을 입거나 아이가 온몸에 잼을 뒤집어쓰거나 벌레 죽을 먹거나 오천 원 받고 죽은 개구리를 삼키거나 악어한테 먹히거나 아이의 아빠가 학교에 와서 춤을 추거나 엄마가 식당에서 소동을 피우거나 고양이와 권투 시합을 하거나 돼지를 타고 다니거나 사자에게 쫓기거나 황소를 타고 슈퍼마켓으로 뛰어들거나 물고기랑 어항 속에서 살거나 등의 기괴하기까지 한 공상은 수많은 후보군 중에서 엄선했다는 인상을 준다. 내가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 이러진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 우리 집에 있는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아이의 생각이 어른과 다르다고 아이가 이상한 건 아니라는 확신을 주기도 한다. 틀릴까 봐 종일 겁을 먹으며 타인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스스로의 생각과 세세한 표현까지 검열하는 데 익숙해진 어른들.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건 성장과 성숙을 가장한 끔찍한 퇴화는 아닐까. 몸의 크기와 상상력을 바꿔 결국 기준과 규율에 완전히 길들이려는 대량생산 라인에 올라타는 과정은 아닐까. 어떤 변수도 감수하지 않고 모두가 아는 방향으로 누구도 거슬리지 않게 하며 나아가는 길을 알려주고 안내하는 게 대체 누굴 위한 일일까. 야생 동물처럼 기를 순 없지만 결국 보호자와 보호자가 속한 사회의 성격이 결국 아이에게 채워진 보이지 않는 사슬이 될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 도로시가 언제까지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을 지니고 있으면 좋겠다. 내가 영영 알지 못할 미지의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도로시가 자유로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