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닝햄 그림 글 / 이주령 옮김
순록은 아프다. 크리스마스라서. 선물 배달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았다. 산타도 이제 겨우 침대에 눕는다. 그런데 아차. 하나 남았다. 선물이. 하나 남아있었다. 산타는 그 선물이 가야 할 곳을 잘 알고 있었다. 산타는 잠옷 위에 붉은 외투를 걸치고 집을 나온다. 추위를 뚫고 비행기 조종사에게 사정하고 사고 나고 지프를 가진 남자에게 부탁하고 사고 나고 오토바이를 가진 소년의 도움을 받고 사고 나고 스키 타는 소녀를 함께 타고 가다가 사고 나고 밧줄을 가진 등산가를 만났지만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이 정도면 산타가 아니라 마동석이었더라도 여섯 번은 중환자실로 실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산타는 기어이 오르고 올라 목적지에 도착하고 양말에 선물을 넣어준다. 그리고 더 험난한 과정을 지나 돌아온다. 순록을 살핀다. 침대로 간다. 존 버닝햄의 다른 이야기들이 그렇듯 크리스마스 선물의 문장들에도 독자의 감정을 일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사건과 과정을 나열하고 이어 놓는다. 지나친 친절함을 경계한다. 저자의 의도가 아닌 독자의 해석에 맡긴다. 현실 노동으로 인한 피로 누적에 시달린 인간의 관점으로 산타의 선택은 무모하다. 1000마리를 잃어버린 양치기도 999마리를 찾고 한 마리를 깜빡했다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을 텐데. 산타는 고민과 갈등에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그저 실행한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평생 기억할 행복의 순간을 개봉하게 된다.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쉽게 감지되지 않더라도 무시될 만큼 사소한 일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이 작은 상자를 위해 한밤중 강추위를 뚫고 산에 오르내리며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산타라는 명성에 실린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충분히 그래야 할 수도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 것보다 좀 더 쉬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살아있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누군가의 목숨 건 헌신과 고민의 등 위에 쉽게 올라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그동안의 내 노력이 기꺼이 누려야 할 권리일 거라는 착각을 경계한다. 도로시를 키우며 아내와 오래 함께 지내며 단 한 사람을 위해 모든 위험과 불편을 감수한 산타의 선택에 끄덕거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