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그린어웨이 그림 / 로버트 브라우닝 글 / 김기택 옮김
하멜른 도시 사람들은 쥐 때문에 괴로웠다. 고양이를 죽이고 자는 아기를 물고 치즈를 훔쳐 먹고 국자를 핥고 생선 통을 깨고 모자 속에 새끼를 치고 시끄럽게 찍찍거리며 인간의 대화를 방해했다. 시장과 시의원들은 압박을 받고 있었고 해결사가 등장한다. 저는 마법을 거는 사람이고 피리 부는 사나이라고 부릅니다. 모기와 박쥐를 몰아내며 다수를 구한 경력이 있으니 소정의 대가만 지불하면 도시의 쥐를 박멸하겠습니다. 뭐? 부른 값의 50배라도 더 주지! 피리 부는 사나이는 열심히 피리를 불었고 쥐는 모두 사라졌다. 그는 약속한 대가를 요구했고 큰소리치던 시장은 태도를 바꿔 1/20만 지급하겠다고 했다. 애초 요구한 금액의 50배라도 더 주겠다고 했으니 따지자면 1/1000로 보수가 줄어든 셈이었다. 20만 원 달라고 했는데 1000만 원이라도 주겠다고 큰소리치다가 일 해결되니 1만 원 내민 꼴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따졌지만 시장은 되려 화를 냈고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다시 피리를 불기 시작했고 도시의 모든 아이들이 깡총거리며 뛰쳐나와 그의 뒤를 따라갔다. 언덕이 갈라지며 피리 부는 사나이와 도시의 모든 아이들은 그 속으로 들어갔고 언덕은 닫혔다. 영원히 사라졌다. 이후 하멜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는 지하동굴 감옥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자세한 까닭은 아무도 몰랐다. 책은 약속을 지키자고 외치며 끝난다. 요약했지만 각 페이지의 묘사는 경이로울 정도로 세세하다. 어릴 적 들었을 때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범죄자처럼 보였지만 지금 다시 보면 범죄자는 시장을 비롯한 의뢰인들이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이유가 시민들의 세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님은 분명하다. 위기를 극적으로 모면한 인간의 탐욕은 돌변하며 노동의 가치를 짓밟으며 거래를 망친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신중한 자였고 분노를 시장을 없애는 데 쓰지 않는다. 더 끔찍한 복수를 통해 도시 전체의 미래를 말살해버린다. 마치 바로 전에 들끓던 쥐떼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처럼. 피리 부는 사나이가 데려온 아이들에게 피리와 마법을 가르치면 어땠을까. 전 세계로 흩어진 피리 부는 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들의 세력을 초토화시킨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HBO 왕좌의 게임에서) 거세병들을 이끌던 대너리스처럼 군림하며 비겁한 자들을 불태우고 약한 자들의 지위를 되돌려준다면. 현세의 인간들에게 경고를 날리는 이런 이야기는 모르는 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약속 미이행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갱생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기회와 연민은 낭비다. 고통스러운 날들을 되돌아보고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는 타인이 아닌 결국엔 자신을 지키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일을 시켰으면 돈을 지불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