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레오 리오니 그림 글 / 최순희 옮김

by Glenn

들쥐 가족이 있었다. 밤낮없이 일을 했다. 프레드릭만 빼고. 왜 안 하냐고 물으면 이런 식으로 답한다. 햇살을 모으고 있어. 색깔을 모으고 있어. 이야기를 모으고 있어. 대체 왜 이런 소릴 듣고 냅뒀는지 모를 일이다. 고양이 입 속에 몰래 넣어놔도 되었을 텐데. 겨울이 오고 열심히 일한 들쥐들은 넉넉한 먹이 속에서 한동안 행복했다. 하지만 먹이가 떨어지자 들쥐들은 잊고 지낸 대화를 떠올렸다. 남들 일할 때 혼자 뭔가 모은다며 빈둥대던 프레드릭. 프레드릭은 무리들의 물음에 답을 한다. 햇살을 보내줄게. 들쥐들은 온기를 느꼈다. 눈 속에서 최후를 맞은 성냥팔이 소녀 같은 상태가 된 것인가. 프레드릭은 다시 눈 감은 들쥐들에게 다양한 꽃 이야길 들려주었고 들쥐들은 그 색들을 또렷이 보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원하는 들쥐들에게 프레드릭은 자문과 자답으로 구성한 시 같은 것을 들려준다. 눈과 얼음, 계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쥐들은 감탄하며 프레드릭을 추앙한다. 프레드릭은 웃는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처음에 읽었을 땐 다양성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였다. 모든 인간에게 각각 주어진 에너지가 모조리 노동에만 쓰일 수는 없으니까. 다른 쓸모를 가진 사회 구성원도 있어야 한다고. 다시 읽어보니 입만 살아있는 예술 직종 인간들과 추종자들에 대한 비아냥과 비판처럼 해석되기도 한다. 특히 저 눈빛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불공평함에 대한 우화 같다. 누군가는 땀 흘리며 일하고 누군가는 다른 식으로 기여를 하는 척 다수를 기만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사기행각에 대한 착시적인 반응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로 인해 이들은 무시당하지 않고 오히려 대중들 위에서 군림하며 여유와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집단 노동에 왜 동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프레드릭은 너희와는 다른 식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고 둘러댄다. 노동에 버금가는 참작될만한 태도는 묘사되지 않았다. 프레드릭은 임기응변식으로 답을 하고 그 답에 살을 붙여 추후 노동을 선택하지 않은 자신을 정당화한다. 들쥐 가족은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굶주림이 더 길어진 후에도 프레드릭은 무사할 수 있을까. 책 커버에는 칼데콧 아너상 스티커가 붙어 있고 난 이 스티커가 붙어 있는 여러 책 중에서 프레드릭의 선정 기준이 가장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