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풍경,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이야기

하가이 레비 감독. 결혼의 풍경

by 백승권

결혼하고 이혼한다. 어떤 남녀는 이 과정을 거친다. 결혼과 이혼, 둘 사이에 터널이 있다.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둘만 알고 있고 둘만 모르기도 하고 아무도 모르기도 하고 모두 알지만 모두 모르는 척하기도 한다. 미라(제시카 차스테인)와 조너선(오스카 아이삭)도 이 터널을 지난다. 이 터널을 둘 만 지나는 게 아니다. 아이가 있다. 둘의 아이. 둘은 갈라진다. 아이 때문에? 아니. 둘은 남들처럼 다른 사람이었고 같은 집에 살자고 언약하지만 갈라진다. 시간과 공간이 갈라지고 최초의 생각과 공동의 계획이 갈라지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갈라진다. HBO 오리지널 시리즈 결혼의 풍경은 너무 진지해지지 말라며 농담을 건네듯 모든 회차를 촬영 세트의 메이킹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슬레이트가 내려가면 화염과 절규의 지옥도를 펼쳐놓는다. 집은 과거의 집이 아니고 두 사람은 더 이상 과거의 연인이 아니다. 가까스로 이성을 놓지 않고 현대인의 매너를 구사하려 하지만 각자 고립되는 동안 누적된 깊은 우울감과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난 오해가 스스로를 옥죄고 나아가 상대의 신경을 으스러뜨린다. 모든 균형이 붕괴된 대화 속에서 결혼의 풍경은 편향된 시선으로 기울어질까 봐 공들인다. 잘잘못을 가리는 게 아닌 같이 손을 잡고 오른 배 위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다가 같이 서로가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로 같이 침수되는 풍경을 그린다. 조너선은 불안한 호흡을 부여잡고 미라는 댐처럼 눈물을 그치지 못한다. 자위와 외도는 아주 사소한 과정처럼 지나가고 언급되고 상징하기도 한다. 육아의 고통은 비중 있게 다뤄진다. 육아를 겪지 않은 자들이 결혼을 통해 최초의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일상과 정신과 육체가 무너지게 되는 데 두 사람 역시 공동의 선택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다. 이럴 줄 몰랐을 것이다. 나는 의지와 노력으로 잘할 수 있다를 혼잣말로 읊조릴 때와 24시간 어른의 언어와 다른 비명을 지르며 그때까지 학습된 모든 지식과 정보체계를 무너뜨리는 아이를 감당하는 것은 다르니까. 현실은 광고와 다를 수밖에 없다. 사전에 인지한다고 덜 힘든 게 될 수 없다. 두 사람은 이 격랑을 제대로 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잘못된 후에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를 더듬는 건 황망하다. 사회적 지위를 일정 수준 갖춘 자들이라면 자기 객관화 회로의 성능은 매번 점검했을 것이다. 하지만 매번 아주 조금씩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균열과 결함을 눈감아주고 눈감아주고 타인과 상황의 탓으로 돌리고 그러다 어느덧 뒤돌아보니 무너진 다리를 발견하게 되는 셈이다. 내 탓이.. 아니 내 탓만일 리 없잖아. 스스로를 속이려는 노력을 계속하다 보면 속을지도 모른다. 그래 당신 탓이지. 우리가 함께 지나온 길이 불타 없어지고 있는 건 전부 다 당신 탓일 거야. 하지만 달콤하고 따땃한 기억을 죄다 지우지 않아서 마음이 오락가락 기운다. 우리의 현재를 잇는 다리와 끈은 우리 스스로 완전히 파괴했지만 다시, 그래도 다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서로의 짐을 완전히 법적으로 분리할 채비를 다 했지만 그래도 느닷없는 온기에 휩싸여 뒤엉켜 섹스를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우린 그래도 우리 아이의 나이만큼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연인이자 부부이고 공동체였으니까. 야생짐승들의 악다구니 같은 언쟁을 이어가고 몸과 공간을 떼었다 붙였다 하다가 인정하고 만다. 우린 앞으로도 어떻게든 만나도 기어이 헤어지고 다시 만나도 결국은 헤어지다가 죽게 될 거라고. 고통과 행복의 최적의 비율을 끝내 찾지 못한 채 집요한 서로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으며 나이 들게 될 거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결혼했을까. 글쎄, 결혼 아닌 다른 터널을 선택했다면 덜 우왁스러운 지옥이었을까. 모든 이성 커플들이여, 어서 결혼과 출산을 서두르자. 사랑하고 사랑하는 서로서로를 최초의 지옥으로 초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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