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by 백승권



마주 본 두 사람의 눈빛이 반짝. 처음 만나 너무 좋다가 헤어진다. 전 인류에게 연애의 과정은 일정한 수순이 있고 이를 편집해서 영상으로 옮긴 연애 영화 역시 그러하다.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 의사도 하고 싶다가 사진작가도 하고 싶다가 글도 쓰고 싶다가. 아무도 막지 않는다. 사려 깊은 엄마 덕분에 율리에는 자신의 삶의 경로를 자유롭게 변경하며 지낸다. 만화 작가 악셀(앤더스 다니엘스 라이)과 눈을 마주친다. 마주 본 두 사람의 눈빛이 반짝. 불이 붙고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둘은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곧 나이 차이는 세대차이가 된다. 동거가 길어지고 가족을 만나도 40대 남성 악셀은 아이를 원한다. 율리에는 원하지 않는다. 아직 자기 인생에 진정 원하는 게 뭔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출산과 육아는 감당할 수 없는 미션이었다. 가족 모임 이후 악셀은 강하게 밀어붙인다. 아이. 아이. 아이를 원해! 율리에 역시 타인의 강요에 의해 꺾일 의지가 아니었다. 율리에는 몰래 들어간 홈파티에서 에이빈드(헤르베르트 노르드룸)와 마주친다. 마주 본 두 사람의 눈빛이 반짝.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술에 취한 밤, 기행과 웃음 속에서 서로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든 닿아있게 만든다. 율리에의 호흡기에서 에이빈드의 호흡기로 짙은 담배연기를 빨아들이고 화장실에서 서로가 바지를 내린 모습을 보며 깔깔거린다. 날이 밝으며 헤어졌지만 다른 밝은 낮에 다시 만난다. 오랜 시간 맞지 않는 부분이 쌓여있던 악셀에게 율리에는 이별을 통보한다. 사랑해. 하지만 사랑하지 않아. 단칼에 끊어질 시간이 아니었다. 악셀은 애초 맨스 플레인의 구루처럼 굴었다. 모든 순간 내가 너보다 더 많이 알아 라는 태도로 설명하고 또 설명을 요구했다. 그럴 때마다 율리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설명하라는 요구에 몹시 힘들어했다. 둘은 헤어지고 에이빈드 역시 여행길에서 거대한 깨달음을 얻고 정치적 올바름을 표방하며 선정적인 콘텐츠로 팔로워를 모으고 있는 여자 친구와 헤어진다.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그렇게 '처음 만나 너무 좋은' 상태를 이어간다.


한참 후 악셀의 소식을 듣는다.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준비하지 않은 임신에 심난했던 율리에는 복잡한 충격에 휩싸인다. 현재 만나는 사람에게 어디까지 진심일 수 있을까. 전 남친을 찾아가고 남은 시간의 일부를 같이 보내며 쓸쓸한 대화를 나눈다. 낭만이 끼어들 틈이 없다.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었고 되돌릴 수 없으며 후회하고 있었지만 역시 되돌릴 수 없었다. 율리에와 악셀의 시간은 납처럼 무거웠다. 그 영향이 에이빈드와의 관계까지 어둡게 휘감고 있었다. 에이빈드는 애초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 더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사람, 율리에는 혼란스러웠고 에이빈드는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 율리에는 곁에 누군가 필요했지만 그건 악셀도 에이빈드도 자기 자신조차 적당한 답이 되지 못했다. 한때 반짝이던 눈망울로 서로의 얼굴과 몸을 감으며 진공청소기처럼 피부와 체액을 빨아들였지만, 지난 일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율리에는 율리에였다. 누구의 율리에가 아닌 율리에 그 자신, 처음부터 늘 혼자만의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 이걸 진정 이해하는 사람은 율리에의 엄마 하나였다. 주차가 귀찮다고 만날 수 없다는 아빠가 아닌.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먼 거리에서 보기에 드문 일이 아니지만 당사자들에겐 세상과 세계관이 뒤흔들리는 사건이다. 정신과 신체가 빨리 시간의 속도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 흥분시키고 언제까지나 힘들게 만드는. 최고와 최악의 상황 속에서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고 상대를 내게 맞추고 싶게 만든다. 익숙해지고 의견이 엇갈리고 내 입장이 더 중요하게 될수록 균열과 거리가 발생하고 애초의 각자의 혼자였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임신과 육아는 변수이자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생명을 담보로 시도하기엔 지나치게 위험한 모험이다. 율리에는 자책하며 슬퍼하는 배우의 사진을 찍고 바라본다. 사진은 수정할 수 있지만 그때 마주한 피사체의 감정은 그럴 수 없다. 지난 시간도 지나간 사람들도 되돌릴 수 없다. 여기까지 쓰고 조금 생각해보니 현실의 삶은 실시간으로 편집될 수 없고 인생은 두 시간 분량의 영화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만 남는다. 편집되지 않는 삶과 사랑에서 매번 최악을 피하긴 어려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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