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라면처럼,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형슬우 감독.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by 백승권

관계는 끝나기 전 증거를 남긴다. (오랫동안 학습되어 내려온 보편적인 인식의) 결혼 시즌에 다다른 성인 남녀의 관계가 끝나가는 시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영(정은채)과 준호(이동휘)에겐 라면이 그중 하나다. 한때는 팔팔 끓여 스프냄새가 온 집에 진동하고 식탁에 냄비를 올리기가 무섭게 젓가락이 오가며 상대 그릇에 먼저 퍼주기도 하고 먼저 말하지 않아도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하며 자기가 더 먹고 싶어도 상대에게 덜어주기도 하고 모자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더 끓이기도 하고 남은 국물이 더 식기 전에 밥을 말아서 같이 먹기도 하고 같이 먹으며 웃고 이야기하고 손잡고 오랫동안 서로의 눈을 마주 보기도 하고 얼굴에 뭐 묻으면 닦아주기도 했을 그 라면. 그 라면을 나눠먹다가 소리 지르고 화를 내고 벌떡 일어나 다 먹지도 않은 라면을 싱크대에 집어던지고 치우지도 않는다. 오랫동안 연애했던 둘의 관계는 그렇게 변한다. 버려진 라면처럼.


새로운 건 아니다. 모든 성인 남녀는 경우에 따라 만나고 고백하고 싸우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다시 만나기도 하다가 다시 싸우고 다시 헤어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현실 당사자들에겐 이보다 더 생의 중력이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별게 아닌 게 아닐 수 없다. 특히나 내가 하고 싶은 일 포기하고 상대의 미래를 위해 혼자 돈을 벌며 거주지를 내어주며 일상을 챙겨가며 주변에서 싫은 소리 들어가며 희생, 헌신, 별 짓을 다한 거 같은데 상대방은 계속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고 미운 말만 계속하면서 속을 뒤집는다. 내가 보호자인지 여자친구인지 모호해지고 가장 가까운 이들도 그렇게 말하고 내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렬히 내 인생 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쏟아부었는지 알 수가 없다. 대답할 수 없다. 방향을 잃었고 길을 잃었으며 신뢰를 잃었고 감정과 의지를 잃었다. 그림을 계속 그렸다면 지금보다 후회는 없었을까. 다른 선택지의 후회에 대한 가정을 하며 후회 중이다.


인생의 정산 시스템은 워낙 디테일해서 지나간 시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한다. 새롭게 가까워진 남자는 매너와 재력, 지위 모두 갖추었지만 아내와 아이까지 갖추어서 돌아버릴 지경이다. 개새끼가 왜 먼저 말을 안 하고 들이대고 지랄이었는지. 어둡고 소박한 분위기에서 공감대 형성하고 위로의 말을 던지며 판을 설계했을 때 그걸 분간할 정신이 난 또 왜 없었는지. 준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띠동갑 차이 나는 여성이 호감을 보이며 접근하니 아 뭐 내가 또 연애할 상황은 아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진 않으니 뭐 또 그냥 흐르는 대로 흐름에 맡겨볼까나. 이런 마인드로 어떻게 새롭게 연애 비슷한 걸 시작하고 내일이 없는 커플들처럼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행복이란 포장지를 잠시 두른 것처럼 반짝거리게 놀았지. 과거를 잊고 지냈던 시간은 마냥 밝고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언제까지 좋을까. 짜장면과 짬뽕이 식어서 싱크대에 내동댕이 쳐질 때까지. 상대방의 전화를 무시해도 된다고 판단했을 때, 그때 한쪽을 선택하지 못한 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외롭고 궁핍했던 제자리로. 영화는 새로울 게 없다.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타인들의 만남과 이별이 그렇듯. 새로운 라면은 많고 언제든 끓일 수 있겠지만 그때의 라면과 지금의 라면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르듯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