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 사랑+전쟁+마약

안소니 루소, 조 루소 감독. 체리

by 백승권

나는 내가 봤던 비참하고 끔찍한 인간이 되어 갔다.


로맨틱한 장면들이 지나치게 강조된 순간, 이후 펼쳐질 체리(톰 홀랜드)의 끔찍한 운명을 직감했다. 그토록 만류했던 전장 속으로 제 발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별이 아니더라도 체리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언제까지나 거리 위의 쓰레기처럼 굴러다니며 살 수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그렇게 살다 죽으라는 법도 없으니까. 체리는 해병대에 들어간다. 머리를 밀고 살인자 출신의 교관의 윽박과 포효 속에서 사람 구하는 법을 익힌다. 팔다리가 절단된 마네킨으로 연습하고 실제 전장에서 내장이 다 튀어나온 부상병과 마주한다. 이 내장을 다시 욱여넣을 사람은 체리뿐이었다. 체리는 그 역할을 하라고 의무병이 된 거였다. 꺼져가는 생명들에게 거짓 희망을 말할수록 의지는 꺼져갔다. 그러다 상사와 대립한 어느 날, 둘을 제외한 동료 모두가 화염 속에서 잿더미가 된다. 체리는 훈장을 받고 제대를 하고 기다려 준 에밀리(시애라 브라보)와 가정을 꾸린다. 지옥에서 벗어난 순간 멈추지 않는 악몽이 시작된다.


이미 죽은 듯한 표정으로 공포에 질려 잠에서 깨고 내장에서 피를 쏟고 감정조절이 안되어 갑자기 화를 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고, 제대 후 체리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같이 사는 에밀리 또한 견디기 힘들었다. 옥시코돈 중독은 헤로인 중독으로 이어지고 체리의 중독은 에밀리의 중독으로까지 번진다. 이후 많은 장면들이 체리와 에밀리가 서로의 팔뚝에 마약주사를 꽂는 묘사에 할애된다. 에밀리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재활원에 보내지지만 다시 뛰쳐나와 둘은 중독인의 삶을 이어 간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약을 하지 않은 상황을 견딜 수 없어서 다시 약을 구하게 되고 돈이 필요하고 노동을 통해 벌지 않으니 불법적인 방식이 빠르고 편하게 여겨졌다. 체리는 은행을 턴다. 그것도 자주, 아주 많이. 은행 턴 돈으로 약을 사고 약이 떨어지면 다시 은행을 털었다. 망가져가는 서로를 보며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판단은 둘의 소유가 아니었다. 판단은 이미 혈관과 뇌에 절여진 마약이 하고 있었고 더 많은 돈과 불법을 하라고 독촉하고 있었다. 체리는 망가진 몸과 정신으로 감옥에 들어간다.


보통 영화들은 로맨스의 기쁨, 전장의 비극과 추악함, 마약중독자의 비참한 삶 등 이 셋 중 하나만 강조해서 보여주곤 하는데 체리는 셋 다 보여준다. 로맨스의 천국으로 날개를 달아주고 전장의 지옥으로 곤두박질친 후 마약 중독의 늪에서 절대 구원하지 않는다. 공감과 설득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캐릭터의 삶이 전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교훈이나 메시지보다는 의도적으로 봐봐 이런 삶이 실제로 있다. 이런 식으로 눈앞에 들이밀고 있다는 느낌. 체리는 마약중독으로 자신과 타인의 삶을 망치고 의무병이 된 전장에서 조차 수많은 죽음과 마주해야 했던 인물이었다. 미국엔 수많은 체리들이 있을 것이다. 여러 사정으로 입대하고 지옥을 겪은 후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다가 마약에 빠져서 주변과 자신의 삶이 완전히 망가진 사람들. 영화 체리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또한 너무 많다. 현실에서 점진적인 변화조차 없으니 그럴 것이다. 기능을 다한 군인들의 피폐한 삶에 대한 영화는 오래전부터 무수했고 여전히 나오고 있으며 체리는 그중 하나다. 체리는 스스로도 구하지 못했고 어떤 타인도 그 일을 해줄 수 없었다. 현실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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