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공감의 범죄

김선, 김곡 감독. 보이스

by 백승권

부모의 보호 본능 자극하려면은

공포감이 한 번에 팍 와야 될 거 아니야

'당장 합의하지 않으면 구속될 수 있다'로 가


어차피 이 바닥 남의 고통 먹고사는 거란 말이야, 응?


의심은 생존기술이다. 조상들이 본성을 물려주지 않았어도 살면서 수차례 신뢰가 배반당하다 보면 경계하게 된다. 함부로 믿다가 뒤통수 맞으면 나만 아프구나. 남이 속은 이야기 들을 때는 혀를 찬다. 이그... 어쩌다 그랬대. 딱 들어도 그게 아니구먼. 남의 일은 늘 쉽다. 돌이 날아오면 피하면 되잖아. 그걸 맞아봐야 돌인지 떡인지 아나. 자신은 평소에 의심이 많고 신중하다는 자기 평가를 내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무 말이나 믿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그런 사람들도 처음 걸려온 전화 한 통화에 평생 모은 7천만 원을 송금한다. 뒤통수 아픈 정도가 아니라 집 살 때 보탤 돈, 자녀 수술비 7천만 원이 계좌에서 사라진다. 이걸 당하면 사람이 죽는다.


보이스 피싱 범죄를 다룬 보이스는 범죄 조직의 운영 방식을 알기 쉽게 보여준다. 상식적으로 알려진 회사라는 조직, 콜센터와 거의 유사하게 운영된다. 규율이 있고 리더가 있으며 실적이 좋으면 인센티브를 받는다. 대본에 따라 고객(보이스 피싱 피해자)을 응대하고 단계별로 움직이는 분업화된 인력이 갖춰져 있다. 은행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돈가방을 채가는 오토바이 날치기가 아니다. 상급자 위에 상급자가 있고 설계자와 실행 인력이 세분화되어 있으며 노동과 보상 체계로 돌아간다. 다시 말하지만 일반 회사와 다를 게 없다. 허튼짓 하다 걸리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거 빼고는.


경계가 흐릿해진다. 회사일처럼 돌아가는 데 목적은 범죄를 통해 수익 창출이고 대상이 되는 고객은 피해를 입는다. 피해의 결과는 끔찍하다. 수많은 가정이 미래를 잃고 파탄 나며 충격과 자학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빈번하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죄책감은 파쇄기에 들어간 서류처럼 쪼개져 있다. 다들 열심히 전화 돌리고 현혹해서 한탕 바짝 벌자 라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자본주의 안에서 돈에 대한 욕망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사기일 때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같은 목적으로 모인 무리들은 자아가 붕괴되지 않는다. 협력과 유대 안에서 서로의 죄책감을 지켜준다. 보이스 피싱 조직원들은 일반 회사일과 같은 노동을 하고 피해자들은 파멸과 죽음으로 치닫는다. 전화 한 통화로 서로의 운명을 바꾼다. 한쪽은 목돈을 벌고 한쪽은 생명을 빼앗긴다.


보이스 피싱 조직의 중책으로서 대본 기획과 설계를 담당한 곽프로(김무열)는 이렇게 말한다. "보이스 피싱은 공감이란 말이야, 어? 보이스 피싱은 무식과 무지를 파고드는 게 아니야 상대방의 희망과 공포를 파고드는 거지." 무서운 이야기다. 이 말에서 보이스 피싱을 광고나 마케팅으로 바꿔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쪽은 돈을 뺏으며 사람을 죽이고 한쪽은 상품과 서비스를 판다는 결과만 다를 뿐. 전직 형사(변요한)가 범죄 조직을 추적하며 과정과 과정을 잇는 액션은 긴장감이 낮다. 범죄가 너무 현실 자체라서 영화에서 악당들이 일부 와해된 들 기분이 전혀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보이스 피싱 범죄 경험은 즐비하고 피해자는 너무 가깝고 너무 많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에 쳐했다는 내용을 들은 피해자들은 전화기 너머 들리는 보이스에 모든 걸 다 내어준다. 이 공포감에서 서둘러 빠져나오고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안전과 평화를 바라며. 사랑은 냉정할 수 없다. 보이스 피싱의 대본은 이 점을 노리고 냉정한 기획으로 만들어진다. 피해자는 죄가 없다지만 실제 피해자들에게 이 말은 잘 들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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