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재스민, 진실을 이야기하면 지는 게임

우디 앨런 감독. 블루 재스민

by 백승권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진실을 이야기하면 지는 게임을 한다.


이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 거짓말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거짓말로 자기 자신까지 현실과 거짓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속이는 경지에 이를 경우 홀로 승리하게 된다. 어설픈 거짓말로 현실과 악수한 다수를 뒤로 한 채 외톨이가 된다. 승리자는.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은 그렇게 승리한 것처럼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거짓말 같았던 과거가 실제 거짓말로 지은 성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후에야 거짓말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거짓말의 피해자, 희생자가 되어 현실세계의 낙오자, 패배자로 낙인 될까 봐 끊임없이 주문 같은 거짓말을 읊조리며 주변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내 남편(알렉 볼드윈)은 이런 사람이었어. 내 아들은 이런 아이였지. 내 집은 이런 규모였고, 내 여행지는 세계 곳곳이었고, 내 파티는 매일매일이었고, 내 인생은 말 그대로 모든 인간 계급의 가장 꼭대기에서 아래 인생들을 내려다보고 있었어... 라며 공기와 대화한다. 선택할 수 없는 부모와 경제력,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살아온 이들을 볼 때마다 천일야화 같은 과거를 소환한다. 천박한 것들과 난 달라. 난 최고였으니까. 그리고 다시 최고가 될 테니까. 그러면서 경제의 경자도 모르고 컴퓨터와 인터넷은 철자도 모르는 수준으로 넋 놓고 있다 인생을 사기당하고 배신감에 치를 떤다.


재스민의 인생을 배신한 건, 재스민에게 사기 친 건, 재스민 바로 자신이었다.


끝을 모르는 허영심이 모두를 난쟁이로 만들고 자신을 자유의 여신상으로 만들며 세상을 자신의 발아래에 두고 눈을 멀게 하고 판단력을 멈추게 했으며 바보로 만들었고 귀머거리를 자초하게 해버렸다. 혼란. 개털인 주제에 자신을 돕는 이에게 주제넘은 충고를 하고 가해자인 주제에 상류층 코스프레를 하며 타인을 깔본다. 그리고 이를 위한 모든 대화 속에 자신이 깨지 못한 꿈, 버리지 못한 과거,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열망을 엮어 거짓말을 삽입한다. 입만 열면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자신을 뒤덮어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하는 거짓말의 지위, 거짓말의 재산, 거짓말의 미래. 그렇게 거짓말로 만든 자신만의 비좁고 불안한 유리병 안에서 파멸을 맞는다.


무지는 결코 거짓말로 가릴 수 없었다.


실수는 반복해서 저질러야만 익숙하고 편안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일 텐데 재스민에게 실수란 돈과 지위가 없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수치스러움과 모욕감'이었다. 그렇게 무지를 방치하고 현재의 안온함을 깨는 감정적인 분노에만 집착하다가 돈과 명예를 모조리 잃고 천박한 중간계로 내려오고 말았다. 천장의 달콤함을 본 이상, 쉽게 철들지 못할 것이다. 화려했던 과거라는 인셉션에서 영영 나오지 못한 채 초라한 노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거짓말의 게임에서 승리한 대가로 여전한 가난함을 입고 외롭고 불안한 표정으로 쓸쓸히 홀로 남아 타인들의'천박하기 그지없는' 행복과 웃음을 덩그러니 관망만 하게 될 것이다. 모래성 같은 부와 명예가 한순간에 사라지자 금은보화 대신 정신병자 같은 혼잣말로 전신을 휘감아야 했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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