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 사이비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대학 1년, 사회 3년. 꾸준함을 기준으로 지금껏 삶의 절반을 교회에 다녔다. 신을 믿는데 필요하다는 예배에 참석했다. 거주지가 일정했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그나마 안정적인 출석을 했다. 정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절대자에게 위탁했고 그의 실제 음성을 들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응답'을 받았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지냈다.
믿음의 서열
난 방언이 없었다. 같이 교회에 다니고 어울리는 애들 중에서 유일했다. 흉내를 낸 적은 있지만 부질없었다. 부흥회를 할 때, 큰 공간에 불이 꺼지고 음악이 쉬지 않고 목사님의 외침이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방언 아이템을 획득하고 싶었지만 스킬이 부족했는지 이스라엘 말인지 지구 상에 없는 언어인지 내 입을 통해 나오진 않았다. 의심했었나. 그래서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 사랑 없으면 소용없네' 같은 복음성가 가사에 위안을 받았다. 하지만 내 합리화에 상관없이 유명 목사님의 설교나 주일 예배 때 설교를 들어보면 방언은 기독교인 레벨업의 필요조건 같았다.
기도
끊임없이 성경에 관련된 단어와 함께 자연스럽게 자신의 바람을 술술술 말하는 이들을 보면 또 거기에 어떤 감정적 동요를 일으킬만한 간절함을 불러일으키는 이들을 볼 때면 부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마치, 타블로나 미쓰라, 아웃사이더의 랩 실력에 반하는 중고등학생 힙합 꿈나무의 심정 같았다. 나도 저렇게 흐름이 끊기지 않으면서도 지적이고 열정적이며 설득력 있게 뭔가를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생각을 말로 꺼내는 것에 대한 부담은 줄었지만, 기도는 신이라는 거대한 대상을 넘어, 같이 눈 감고 손을 모으고 있는 '인간'들이 듣고 있다는 점에서 압박을 지울 수 없었다.
열명 남짓 밴드 규모의 찬양단에서 노래도 불렀다. 예배 전에 30분 정도 분위기를 달구는 역할이었다. 학교 공부와 책 말고는 딱히 정착할 대상이 없었던 시절이라 라이브 연주 안에서 마이크로 뭔가를 지른다는 쾌감을 즐겼다.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니까 천국행 티켓이 장바구니에 담기겠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속물적인 건 아니지만 내가 뭔가 신을 위해 어떤 충성을 보이고 있구나 정도는 생각했던 것 같다. 웃긴 건, 수백 명이 사람 앞에서 마이크로 찬양을 하면서 맘 속에는 악마의 말들이 오갔다는 점이다. 마치 마음속 악마가 이 개새끼야 병신아 시발아 등신아 미친 새끼 지랄하고 있네 뭐 이런 말들이 장기간 들렸던 것 같다. 그러면서 믿음이 강한 만큼 사탄의 유혹도 강하다는 설교를 떠올렸다. 내가 믿음이 강한 건가... 신을 향한 예배에 참여해 이러니까 악마들이 엉기는 건가.. 싶었다. 어둠의 목소리는 쉽게 떠나지 않았다.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 거주지를 옮기고 잠시 교회를 나가지 못했다. 빈 시간이 늘면서 죄책감이 들었다. 죄책감은 좋은 신호야. 다른 교회를 찾아보자. 그렇게 하나의 교회를 찾아 1년 넘게 다니고 군대를 가고 거주지를 옮기고 흐지부지되었다. 아 생각해보니 군대 가기 전에 친척의 추천으로 압구정에 있는 교회를 다닌 적 있었다. 건물도 멋지고 규모도 엄청났고 찬양하는 밴드의 실력도 좋았다. 특송으로 들었던 I believe I can fly는 지금도 선명하다. 신기한 구경도 많았다. 방송국 카메라 같은 걸로 예배를 촬영하는 모습들, 예배 중간에 그때 한참 뜨겁던 월드컵의 코치를 인사시키는 모습, 예배 중간에 앞자리에 앉았다는 국회의원들을 인사시키는 모습, 그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듯한 목사의 멘트들,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일정한 경제적 지위를 획득한 이들을 향한 내용 등, 좀, 별로였다.
취업하며 여자 친구와 다른 교회를 다녔다. 진풍경. 강남의 옷 잘 입는 여자들과 최신 명품백은 거기 다 모인 것 같았다. 목사님이 서글서글해 한동안 좋은 느낌으로 다녔다. 예배 마지막에 찬양을 길게 높은 톤으로 부른 것은 부담스러웠지만 20대 중후반까지 교회에 다녔다면 납득하고 받아들일만한 부분이었다.
결혼을 했고 거주지를 다시 옮기고 한동안 안 다니다가 어른의 추천으로 다른 교회에 다녔다. 그때의 난, 중고등학생의 교회 다닐 때와 머리가 많이 달랐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도 읽고 내가 몰랐던 부분이나 지금껏 나와 다른 관점의 글들도 읽고 예배의 기원에 대한 전문 서적도 읽고 종교 관련 영화도 눈여겨보고, 교회의 패악도 알게 되고, 신앙인의 탈을 쓴 악마의 모습도 듣게 되고, 논쟁적인 글들도 읽고, 신과 무신의 사이에서 입장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이성과 논리만으로는 딱히 선택하기엔 지나온 시간 속에서 쌓인 무의식의 상황 속에서도 의식을 지배하는 존재에 대한 학습이 강해 한쪽으로 기울기가 애매했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의심했다.
그런 상태로 만난 새로운 교회는 목사님은 충격이었다. 아마 이사를 가지 않았다면 지금도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혁명가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 목사님의 조용한 혁명은 기존 체제의 많은 부분과 부딪치고 뒤흔들고 있었다. 그분은 자신의 한계와 허물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현재의 종교가 가진 오염을 비판하는데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리고 현실 세계의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말하며 그 주인공이 신앙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다. 지금도 그 자리에서 혁명을 이어 가시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후 이사를 갔고 현재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무신론자를 밝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는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 맞습니다라고 밝힐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몇 달 전 예배 중에는 과연 당신이 있기나 하는 거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이건 원망이나 탄식이 아닌 근본적인 궁금증이었다. 그러면서 사회에서 만나는 이들과 교회나 종교 이야기를 나눌 때 악마가 되어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알고 있는 뉴스를 알려주며 그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의 무지를 자극했고, 그들이 교회에서 배운 것들을 부정했다. 행동하지 않는 모습을 비웃었고, 약자의 편에 서지 않는 모습을 비난했다.
최소한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는 너네가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수준. 너희들의 무지가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수준. 너희들의 맹종이 결국 너희들이 섬기는 이가 추구했던 희생과 선을 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하는 수준. 바뀐 건 없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정체불명의 의무감에 젖은 건 아니고. 불편한 부분을 불편하다 말하고 싶었다. 그 수많은 괴리들.
얼마 전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를 봤다.
극영화로 찍었어도 이보다 더 살벌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댐 건축으로 인한 수몰 예정지역이 된 마을. 사기꾼 장로 목사 일당을 통해 신을 처음 만난 사람들. 그들이 겪는 잠시의 기적. 그리고 완전히 세뇌된 천국에 대한 망상. 천국의 입장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협박. 이 암표를 사기 위해 보상금을 모조리 갖다 바치는 모습들. 눈물 흘리고 벌벌 떨며 기도하는 모습들. 신앙과 범죄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년 목사. 그의 과거와 그의 순수, 그의 선택과 악마로 변하는 과정들.
단순히 기독교 맹신의 부작용과 비판의 태도를 갖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종교는 무엇인가. 사기를 믿어서 종교적 체험을 하는 피해자들과 신을 믿고 있으면서도 간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 중 당신의 입장은 무엇인가. 누가 더 잘못되었다고 단죄할 수 있는가. 혹시 신은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인간만 자신만의 관점으로 신을 해석하고 은혜를 가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천 명의 사람들이 만 개의 신을 섬기는 것은 아닌가. 이런 잘못을 바로 잡는다고 현실이 윤택해지는가. 천국에 대한 증거 없이 현세의 안위를 포기하는 게 맞는 건가. 장로가 추천하면 술집에 윤락녀로 취직하는 게 맞는가. 끝도 없다. 수천 명이 보고 수천 개의 관점으로 달리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