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커티스 감독. 어바웃 타임
가족
연인
사랑
관계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들을
이미 정해진 규칙대로 대하는 것만큼
긴 인생을 지루하게 사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산다.
부모를 존경해야 하고
연인을 사랑해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며
성인은 성인다워야 한다고
배우고 익히고 그렇게 한다.
그게 왜 맞는지 궁금해하기 보다
그저 저항 없이 길들여진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아마 맞나 보다 싶은 건지.
그렇게
똑같이 사랑하고
똑같이 인사하고
똑같은 역할을 맡으며
똑같은 감정에 안도하며
죽어간다.
그게 틀릴 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여긴다
그렇게
부모와 자식과 연인과 친구를 규정한다.
보이지 않는 규율에 가두고
실수를 지적하며 바로잡으려 든다.
나이 들면
그렇게 익숙해진 것들을
규범이라 말하며 훈계하고
그 질서 안에서 무력해진 자신을
잘 적응하며 지냈다고
자위한다.
어바웃 타임은 이 짧고도 긴 인생에서
그게 다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묻는 영화다.
문명이 발전하고 자본이 닦아놓은 사회 안에서
어느 한 명 안정되어 보이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가족 구성원들
50 넘은 후 책 보며 탁구만 치는 아버지(빌 나이)
옷 잘 차려 입고 집에서만 은둔하는 삼촌
차갑기가 더할 나위 없는 엄마(린제이 던칸)
다 커도 맨발로 사방을
뛰어다니는 여동생(리디아 윌슨)
그리고 다수 안에서 공포를 느끼며
어쩔 줄 모르는 소심한 아들(돔놀 글리슨)
결함들이 모여 완벽이 된다.
매일 바다를 보고 차를 마시고
천국 같은 즐거움과 고요, 평화를 누빈다.
연인의 뜨거움도 그 안에서 일부분이 되고
이렇게 시간을 같이 보내는 일만이
나머지 삶의 부자연스러움을 견디는 방식이라고
의미 있고 후회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리처드 커티스 감독은 말하는 듯 하다.
편집된 장면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 가족이 이렇게 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과거로 돌리고 돌렸을까.
영화 밖 현실에선 상상으로만 가능한 기적을
얼마나 많이 사용해야 했을까.
동생이 교통사고가 나서 얼굴이 엉망이 되어도
결혼식에 비바람이 몰아쳐
음식과 옷을 다 망쳐버려도
잘못된 일은 그대로 놔두는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모든 실수를 되돌리려다가는
다시 생성된 모든 시간 속에서
다른 사건과 다른 희생자들이
생겨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어둠 속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
원하는 과거의 시간대로 돌아가도
어떤 상처는 인내해야 하고
어떤 죽음은 막지 못한다.
그렇게 얻은 어려운 사랑, 결혼, 아이들.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아들이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본
아들의 아버지는
서서히 사라져 간다.
한 세대가 탄생하면서
한 세대는 죽음을 맞는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은 아마도
트리 오브 라이프(테런스 맬릭 감독)의
가장 반대편에 선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소재, 같은 이야기지만
가장 다른 방식의
시간에 대한 영화
인간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고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정과 육체와 관계의 변화에
물들어가야 할 뿐이라는 진리를
화보 같은 영상과 잊을 수 없는 음악,
사랑스러운 연기들로 부드럽게 그려주고 있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사랑받지 않을 가치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이렇게 멋지게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