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석 감독. 변호인
법을 공부하던 놈이
고시책을 팔고
훔쳐 먹은 돼지국밥을 토해 낸 날.
가난한 사내는 부끄러웠다.
7년 후,
가족들 데리고 국밥집에 다시 들어온 날.
과거 노가다 했던 아파트로 이사한 날,
땀과 먼지로 가득했던 시절,
포기하지 말자고
시멘트에 새긴 글씨는 여전히 선명했다.
그가 돌아와
국밥집 아줌마에게 용서를 빌고 있었다.
품 속 봉투를 내밀며
두 손을 꽉 감싸 쥐고 있었다.
은혜를 갚는 일은 인간의 도리인데
작은 것 일지언정
도적질을 사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핵전쟁에서 인류를 구한 것도 아니고)
저리도 당연한 장면에서,
왜 그랬을까.
목 밑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난 감동 코드에 민감한 사람이 아닌데
눈가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저 사람
저 사내
저 변호사
저 대통령이었던
저 분
한 때 곁에 있었구나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졌지만
그래도 한 때 저 초라한 행색과 걸쭉한 말투와
웃을 때마다 선명한 주름이 가득했던 저 사람이
곁에 있었다. 실제로, 존재했다.
부릅뜬 눈으로 변호를 맡겠다고 한 장면도 아닌
법정에서 정의를 부르짖는 장면도 아닌
왜, 저 국밥 한 그릇을 훔쳐 먹고
오래 시간을 지나 돌아와
그때 죄송했다며 사과하던 장면에서
형언하기 힘든 뭉클함이 밀려왔을까.
노무현을 그렇게 기억했었나 보다.
미안한 일을 저질렀다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그럴 수 있었기에,
법을 공부한 이로써
국가가 한 국민에게 저지르는 폭력과 만행을 두고 볼 수 없었고
마냥 미안해하고 분노하며 조금 늦게라도
변호를 맡겠다고 한 것 아니었을까.
미안한 일에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세상에서
미안하다고 말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국밥 아줌마가 매일매일 뜨거운 국밥을 팔듯
법조인은 국민의 권리를 지켜줘야 했는데
경찰과 군인은 신체적 위험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했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아서
그는 유독 돋보였다.
권력을 무기로 공작을 꾸미고
법을 내세워 죄 없는 약자들을 가두고
안보를 내세워 학생을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정치인, 판검사, 경찰 속에서
그는 의도하지 않게 외로운 의인이 되어야 했다.
책으로 배우고
몸으로 행하지 않는 악인들에게
악독한 권력의 시녀들에게
폭력의 졸개들에게
비뚤어진 애국심을 가진 비겁한 자들에게
원칙을 부르짖어야 했다.
국가는 국민이라고
국가는 니들이 따르는 독재자가 아니라
니들이 짓밟고 고문하고 죽이고 있는
국민이라고
그렇게 국민들 앞에서 국민들의 인권을 지키려 했다.
그렇게 무지하고 나약한 국민들을 변호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최종학력이 고졸이었던 그런 사람이
대전에서 판사를 했던 그런 사람이
부산에서 변호사를 했던 그런 사람이
한국에서 대통령을 했고
지금은 사진과 글로만 남아있다.
모두를 변호했지만
자신은 끝내 변호하지 못했던 사람
다시 볼 수 없겠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진한 미안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미친 세상이
앞으로도 계속,
그를 소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