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어디에 당신의 자리가 있을까. 당신은 누구일까. 어떤 형태일까. 과거의 잔상인가. 타버린 재인가. 왜 맴돌고 있을까. 이제 괜찮을까. 덮인 걸까. 인물인가 사건인가. 공간인가 아니 날씨였나. 주섬주섬 스스로를 진단할 수 있다는 오만은 꺼낼 수 없지만 내가 나의 정신 상담을 담당하는 주치의라면 그 주치의에게 의견을 조금 전달할 수 있는 위치라면 나는 나라는 환자에게 고객에게 이전보다 조금 괜찮아진 것처럼 보인다고 속삭일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나에게 소유된 나로 너무 비좁은 시각 안에 갇혀 지내고 있지만 그 빈도는 감소했다. 나를 작은 개인으로만 여기고 동정과 연민을 바라고 홀로 속을 태우는 개인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나는 우리의 나. 나는 개인이 아닌 우리에게 소속되었으며 우리의 필요에 의해 존재해야 하고 우리에게서 뿜어 나오는 온기를 통해 생존해야 하는 일종의 성스러운 의무를 지니고 있음을 감지한다. 이건 단순히 관점의 방향 전환 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안다. 나는 단순히 우리의 위치만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닌 우리가 나에게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력에 대해 실감하고 받아들이며 의지만이 아닌 학습을 통해 체화하고 모든 육체와 정신의 움직임이 추구하는 면에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미숙한 면이 있다면 찾아내 보완하고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서둘러 지식과 정보를 채집하여 습득하며 엄격하게 통제되어 있던 스스로의 원본을 더 해체시켜 조각들을 우리의 영역으로 옮겨 놓는다. 나를 위한 성역을 지운다. 나만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겼던 무의식의 문짝을 뜯어낸다. 그런 건 이제 필요 없고 소용없으며 덧없다. 나는 그만 내 것이어야 한다. 수십 년을 감쌌던 낡은 덮개를 풀어내고 먼지를 털고 물에 씻고 잘 말려서 정제하여 가공하여 포장하여 우리를 위한 더 나은 이미지와 서비스로 바꾸기로 한다. 여전히 나는 불쑥 괴물처럼 소리 지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허공을 향해 팔다리를 휘두르며 불특정 다수를 저주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사는 스스로의 분노를 정당화한다. 그 부작용을 피해를 후폭풍을 우리가 당해서는 안된다. 내가 어떤 일을 겪었든 어떤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든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있든 우리보다 급하거나 중요할 수 없다. 이건 그동안 지나치게 차지하고 있었다고 여겨지는 나의 영역을 축소하자는 작은 메모지에 쓰는 대자보 습작 정도일지도 모른다. 아무 이면지에나 휘갈기는 정숙이나 하면 된다 같은 작심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오래전부터 시도하고 진행하고 있는 새로운 정신의 도색 과정에 대한 암호어로 작성한 작업 지시서일지도 모른다. 허비한 시간이 있었겠지. 줄이고 줄여서 나의 우리에게 좀 더 헌납하고 싶다. 이것이 나에 대한 복수이자 갱생의 다짐 같은 것이다. 늘 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