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글의 관계는 새의 부화 과정과도 같다. 고통이 일정한 크기로 자라면 뼈와 근육을 갖추면 환경이 자신의 물리적 크기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내벽을 밀고 두드려 바깥으로 솟아오른다. 뛰쳐나온다. 빛을 향해 달려간다. 그렇게 고통은 기어이 글이 된다. 걸음마를 하고 구겨진 날개를 펴고 볕에 몸을 말리며 공기에 적응한다. 육중하고 미세한 모든 움직임 속에서 고통은 글로 자라난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숨이 차고 외마디 비명을 배울 때마다 온몸이 분열하듯 떨린다. 왜 바깥으로 나왔지. 왜 알 속에 그대로 있지 못했을까. 왜 밖으로 나오고 싶어 했는지 기억에 없다. 그땐 어쩔 수 없었어. 온통 어둠이어서 발버둥 쳤으니까. 점점 커가며 세계가 좁다는 걸 절감했으니까. 하지만 껍질을 깨고 나와보니 어둠 속의 발버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괜찮은가. 고통은 글로 외형과 환경을 바꾸며 성공의 환희를 누리나. 부끄러움을 배우며 노출증에 시달리며 늘 스스로를 감시하며 고통이 글이 되는 순간 발가벗겨지고 무형의 벽에 갇혀 아무도 관심 없고 모두가 수군거리는 듯한 환청에 시달리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다 깨닫는다. 고통은 글로 진화한 것이 아닌 글이라는 새로운 껍질 안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탈피가 아닌 그저 옆방으로 이동했음을. 꿈에서 더 깊은 꿈으로 빠져들었음을. 하지만 그제야 고통은 공공재로서의 소시민적 권리를 누리게 된다. 전과 다른 외로움으로 갈아입는다. 본질적인 가치의 전환이 아닌 존재의 외면과 형태가 바뀌는 것. 오직 고통을 글로 옮겨본 자들만의 은밀한 취미가 그렇게 시작된다. 창조나 쇠락이 아닌 물이 불이 되는 것, 또는 울음이 편지가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