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여러 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몸은 하나, 시간은 하나. 상상 속에서는 여러 개의 길을 여러 개의 몸과 여러 개의 시간이 얽혀 모두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몽롱함이 깨어도 알 수 있다. 몸이 하나, 시간이 하나면 길도 하나라는 것을. 선택한 하나의 길에서 우연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어떤 하나의 길을 선택하든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작정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을 순 없으니까. 하나의 길에선 하나의 선택이 파생한 하나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게 되어 있다. 포기한 나머지 길이 자꾸 생각날지도 모르지. 돌아가고 싶다면 몸과 시간을 반납하면 된다. 모든 선택엔 대가가 따른다. 앞으로 나아가던 뒤로 되돌리던. 그리고 아무도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대가는 따른다. 심지어 어떤 길을 선택하지 않아도 대가는 돌아온다.
새로운 길을 걷고 있었다. 새로운 문제, 새로운 시공간,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대화, 새로운 풍경, 새로운 모임, 새로운 일정, 새로운 지식과 정보, 새로운 불안과 두려움, ‘새로운‘이 ‘낯설고 어려운’으로 대체되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새로운, 새로운, 새로운 벽지와 도로포장과 공기와 날씨로 가득한 새로운 길, 이 새로운 길이 내 기존 보폭에 맞는지 내가 어디까지 근육의 수축이완과 관절이 꺾이는 각도를 조절해야 맞출 수 있는지 이런 고민이 더 나은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새로운 길은 늘 새로운 고민이었다. 내가 길 자체가 될 순 없으니까. 내가 아스팔트, 시멘트, 자갈, 보도블록, 레일철근이 될 순 없으니까. 나는 늘 지면과 내 발의 접촉면이 닿을 때 완만하고 균형감 있고 자연스러울 수 있는지 점점 덜 지치고 가속이 붙고 리듬을 탈 수 있는지 신경 써야 했다. 기이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적도 많았다. 한 명의 인간에게 주어지는 한 번의 인생에서 감당하는 행복을 수량화시킨다면 평균 이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정확한 시기를 떠올리기조차 넌덜머리 나는 과거와 비교할 때 드문 일이었다. 모든 날이 맑을 수는 없었지만 흐리고 어두운 날조차 빛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상은 자주 고요하게 실현되곤 했다. 가만히 서 있는 날 없었지만 바람이 등을 떠밀어 대신 움직이게 해주는 듯한 날도 있었다. 그러다 코에 땅이 닿았다. 내가 넘어진 게 아니라 땅이 솟아오른 거였다.
얼굴에 묻은 흙먼지를 닦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구름의 솜털 같은 테두리는 느리고 확실하게 항상 움직이고 있었고 이 우주 과학이 미학적 경이로움으로 옮겨지는 장면을 나는 키가 더 작을 때부터 사랑했다. 그런데 이번에 움직이는 건 구름 아니었다. 어둡고 둥그런 아니 울퉁불퉁한 아니 뒤섞인 형체들이 점처럼 보이다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사라졌고 지면을 박살 내며 눈앞으로 추락했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낙하산이었다. 하나 둘 셋 넷...
*이 글이 쓰인 시점은 바로 이전의 글들 중 '고통'과 '마침표' 사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