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신과 의사에게

by Glenn

멍멍멍, 개소리로 시작한다. 그렇게 끝날 거 같아서. 적응이 싫다. 새로운 것들이 버겁다. 변하는 것들에 나를 맞추려는 과정이 괴롭다. 지천에 널린 조언 명언 격언 다 쓸어 담아 예쁜 서체와 이미지로 안구를 깨뜨려 쑤셔 넣어도 어쩔 수 없다. 수면 부족? 노화? 운동 부족? 천성적 게으름? 뭐라고 원인을 따져본다고 거기에 맞는 처방전은 없다. 의지박약? 번아웃? 어떤 상태를 특정하는 키워드는 많다. 정확하지 않을 뿐. 맞는 말이라고 해도 그뿐이다. 상태의 정의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느리게 움직이다가 느리게 숨을 쉬다가 느리게 움츠리다가 느리게 느리게 눈을 지그시 감다가 느리게 그냥 두거나 어떤 의무감에 사로잡혀 느리게 꿈틀거리거나 사고와 행동 사이의 시간 차 조절에 실패하거나 결국 아무것도 못하거나 하더라도 확신하지 못하거나 못하는 것을 못하다가 그마저도 못하게 된다. 무기력증? 그럴 수 있지, 그래서? 그저 잠시 아니 조금 오래 정지하고 싶다. 새로운 시도를 거부하고 싶다. 감정 노동인지 물리적 노동인지 허튼소리 같은 노동인지 그만두고 싶다. 그만두지 않으면 새로운 거짓말을 대량 생산 해야 하니까. 제발 제발 좀. 원인 결과 또는 그 사이를 다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상담? 토로? 확신이 없다. 잠시 떠들고 어떤 비싼 친절을 들을 수 있을까? 진심? 공감? 진정성? 온몸이 끼는 좁은 통로를 기어가다가 온몸에 쥐덫에 물렸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다. 현상태가 별로라고 아무리 기록한들 나아질 리 없다. 기록의 양에 비례해 어떤 기적이 돋아났다면 양 어깨 밑에 작은 날개라도 덮여있었을 텐데. 얼마 전엔 주술이나 저주에 걸렸다는 망상을 한 적도 있다. 나쁘게 생각하면 한없이 나쁘지만 그저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저절로 괜찮아지지는 않는다. 새로움이 왜 증오와 부정의 대상이 되었을까. 언제부터 큰소리로 울지 못해 더 크게 웃고 있을까. 이건 아마 연기력의 문제일지도 몰라. 너무 오랫동안 장편 드라마의 대본을 쥐고 있었는지도 몰라. 타인을 의식하는 피로감? 타인이 언제는 없었나. 태어나기도 전부터 타인의 세상이었는데? 충동과 급발진으로 돌진하는 해석? 방어기제? 누가 뭐가 대체 왜 날 공격해야 하는데. 환상과 허상 속에서 산채로 얼굴에 흙이 덮이는 꿈을 꾸다가 깰 타이밍을 놓쳤나. 문이 없다. 공간에 대한 인지가 없다. 벽이 더듬어지지 않는다. 시선이 많이 흐리고 마구 분산된다. 돈이 문제가 아니야. 과거에 썼던 말을 다시 꺼내 서술한들 현재의 상태가 동일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겨울에만 이랬던 게 아냐. 끔찍한 여름도 많았으니까. 온갖 의무감에 시달리고 온갖 새로운 것들과 마주하며 온갖 사이즈에 정신과 뼈와 세포를 끼어 맞추며 기괴한 반죽 덩어리가 되어 이걸 적응이라고 스스로에게 조소를 보내고 있나. 값어치를 상실한 시간을 언제까지 허용할까. 나와 타인의 삶에 죄를 짓고 있나. 용서가 가능하긴 한가. 법정에 서서 바로잡을 의지는 있나. 초점 잃은 부러움은 태초에도 지니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저 같이 있고 싶다. 나보다 조금 더 날 사랑해 주는 존재들과. 이렇게 새것과 변화와 낯섦의 교차와 교차 사이에서 한도 끝도 없이 구토하며 현기증으로 앉지도 서지도 못하며 휘적거리는 날 아직은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다. 그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가만히 누워 음악을 듣다가 오랫동안 잠들고 싶다. 다시 깨어나 다시 잠들고 다시 잠들고 다시 잠들며 사라지고 싶다. 새로운 몸과 뇌로 갈아입고 더 나은 사람 또는 다른 사람인척 태연하고 살고 싶다. 원하는 만큼 좋아하고 웃고 떠들고 근사한 아침점심저녁을 먹고 나서 다시 잠들고 싶다. 뭔가 달라져 있길 바라며. 최소한 부정했던 것들 사이에서 다시 침착하게 걸을 수 있기를 바라며. 언젠가 만날 지 모를 정신과 의사에게 그땐 좀 그랬지만 지금은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