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 없는 세상과 구글포토 사이에서

by Glenn

세상 어딘가에 회복탄력성이란 게 있다면 나에겐 없는 것 같다. 백지영 노래 가사처럼 흘러넘친 감정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마치 수많은 색이 섞인 페인트를 손으로 쥐고 있는 것 같다. 펼치면 마저 흘러내리고 촉감은 척척하고 찐득거리고 아무리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얼룩을 오래 바라보다가 집에 가는 마차에 젖은 솜으로 감싼 몸을 싣는다. 휴대폰을 꺼내 구글포토를 연다. 도로시, 도로시, 도로시, 온통 도로시 그리고 나의 아내, 나의 사랑과 사람과 전부와 역사와 우주의 중심과 피와 뼈와 심장과 숨과 뺨으로 가득한 슬라이드를 휘휘 넘긴다. 수만 장의 사진들 중에 8,7,6,5,4,3,2,1년 전 오늘의 사진들이 오늘의 도로시와 오늘의 아내가 함께 담긴 사진이 차르르 상영된다. 1시간 정도 후면 둘의 실물과 마주하지만 과거의 너희가 담긴 이미지들은 뭔가 손 시린 날의 캐시미어 장갑처럼 각막과 혈관을 데운다. 종종 눈물도 고여. 날 너희 인생에 끼여줘서 고마워. 분노와 증오가 오랜 시간을 등지고 체념을 지나 무념과 용서에 이르면 그렇게 성분이 바뀌면 나는 점점 종종 이따금 갑자기 또는 어쩌다 다른 사람처럼 되기도 한다. 나도 내가 낯설어 들키지 않으려 애써 숨기고 들썩거리는 마음이 직조하는 단어들 중 몇 개를 골라 말을 만들고 그걸 꺼내어 공기 중에 가만히 놓는다. 떠나고 싶다. 눈과 발에서 먼 곳으로. 그리워할 날이 있겠지. 없을 정도로 더 좋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근사한 미래일 것이다. 나는 다른 방향을 보고 있고 다른 방향은 아직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것 같다. 언젠가 마주치고 거기로 빨려 들어간다면 과거의 형체와 그림자는 사라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면 무엇을 포기하고 어떤 걸 얻을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새로운 나에게 적응할 수 있을까. 과거를 용서했다며 혼자 웃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런 상상을 했다며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손톱으로 손톱을 뜯을까. 도로시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