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민이 있다. 일에 대한 고민. 내가 선택한 일이 남이 선택한 일로 옮겨지는 고민.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또는 차장, 부장, 팀장 어쩌구 중 뭐로 불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 명확한 호칭에 대한 선택권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선택의 주도권을 쥐고 싶을 때 속한 조직의 의견 및 요구하는 방향성과 다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무엇을 선택하든 어떻게 손실을 최소화하고 중장기적인 이익을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 맡겨지는 일을 선택할 수 없다면 결국 내가 원하는 범주 안에서 일이 주어지는 영역으로 갈아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 다시 이직이 최선인가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 없이 순수하게 커리어에 대한 갈등요소로 인해 회사를 옮기는 것이 지금 이 시기에 가장 맞는 옵션인가에 대한 고민. 지금 이 시기라면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이 곳곳에서 널을 뛰고 있고 근거리와 원거리에서 이름을 아는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위기가 느낌이 아닌 실체라는 것, 하여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과 남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절충할 수 없다면 어느 선택이 더 나을 거냐는 고민. 보통 이런 비슷한 고민에 대해서는 주로 듣거나 의견을 덧붙이는 입장이었다. 꿈이 직업이 된 사람이더라도 그 직업의 현재 가치에 대한 해석과 판단을 올곧이 자신에게만 미뤄둘 수는 없기 때문에, 요즘은 거의 유사한 일을 해왔던 지인들을 대상으로 종종 묻는다. 나의 현재와 또 원하는 미래에 대해서. 어쩔 수 없다. 견뎌야 한다. 버텨야 한다. 다 그렇게 산다. 이 정도 일하면 다 비슷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었지만 옮길 절이 없으면 생각 좀 더 해봐야 된다... 등등 대부분 예상 가능한 범주 안에서 답들이 떠돈다. 그중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명확하다, 업에 대한 태도가 나와 다르다, 너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없진 않냐 등등의 의견도 있다. 틀린 말은 없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수집하려고 고민을 공유한 건 아니니까. 그들은 내가 아니고 나는 그들이 아니라서 깊이와 맥락을 죄다 엮어서 오은영 선생님의 매직 같은 솔루션을 줄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카피라이터로서 유통기한에 대해 스스로의 힘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는 점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또한 근사한 말이다. 히지만 자가 진단을 거치면 크리에이티브는 가능하지만 디렉팅은 좀 갸우뚱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내가 (타인을 향한) 디렉팅이 가능한가. 디렉팅을 원하는가. 원하거나 필요한 디렉팅이 가능한가. 오로지 업무 영역으로만 좁혀서 디렉팅을 전달하는 일은 가능한가. 사람의 마음과 금전이 오고 가는 일을 관리하는 일을 겸업하는 게 맞는가. 남들은 이 나이 되면 다들 아둥바둥 그렇게 산다라고 하지만 나도 그렇게 남들처럼 사는 게 맞는가. 그렇게 사는 남들을 낮추어보는 게 아닌 내가 내 일에 더 집중했을 때 더 나은 부가가치를 생성할 수 있다면 차라리 원하고 더 전문적인 영역에 더 집중하는 게 개인과 다수, 조직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이 아닌가. 90살 정도까지 카피를 쓰며 돈을 버는 일은 누구도 원하지 않을 선택지인가. 광고계에서는 "카피라이터가 카피만 쓸 수는 없다"는 말은 왜 그렇게 남발되는가. 세상 어떤 카피라이터가 카피만 생산하나. 어떤 광고회사와 광고제작팀이 오직 카피 한 줄로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크리에이티브를 정리하나. 누구 의견이든 어차피 수정할 거면서. 어째서 카피라이터가 계속 카피라이터로서 카피를 쓰고 싶다는 열망이 경력직 카피라이터를 원하는 업계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아마추어적 태도로 받아들여져야 하나. 난 약 4년 전에 카피라는 업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https://brunch.co.kr/@sk0279/898) 정리한 적이 있다. 최근에 다시 읽어봤고 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물론 내 의견이 온전히 반영되는 업무 환경을 만드는 일은 타인의 뇌를 모두 개조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AI로 인한 변화가 두려운 게 아니다. 어느 순간 원하지 않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며 돈을 벌다가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되어 있을까 봐 그게 난감해진다. 무엇을 희생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 희생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떻게 희생의 대가를 치르게 될까. 그 이후에 난 무엇을 쓰고 있을까. 그때도 카피라이터일까. 지금은 카피라이터인가. 입장이 확실했다면 이런 고민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나 해서 ChatGPT에게 물어봤더니 처세서 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