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없는 사람에게

by Glenn

팀장님 안녕하세요. 글을 시작하기 앞서 밝힐 게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아주 오랫동안 아내와 아이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장문의 편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어쩌면 최초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입니다. 당신은 최초입니다. 최초의 팀장님입니다. 내 인생 최초로 장문의 편지를 드리는 팀장님입니다. 팀장님에게 이 편지를 직접 건넬 수 있을까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팀장님은 내일부터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팀장님이 최초인 이유를 쓰기 위해 얼마만큼의 분량이 필요할까요. 어림짐작해도 A4 10장을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팀장님은 약 4년 동안 저의 팀장님이었고 가까이에 있었으며 많은 일들을 함께했고 거의 매일 대화했습니다. 가족은 근거리라는 이유만으로도 불화가 산불처럼 번지곤 하는데 가족이 아닌 타인, 특히 회사에서 만난 사회적 관계끼리는 더 많은 오해와 침묵 사이로 퍼지는 증오, 분노의 누적과 정체불명의 열등감, 멸시당한 기분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좌절로 점철되곤 합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제가 팀장님을 만나기 전까지 겪어온 팀장들과의 사이가 그랬습니다. 팀장님은 달랐습니다.


팀장님의 첫인상은 "호구"였습니다.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입 카피라이터일 때 첫 회사 대표는 첫 미팅에서 대략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너무 애쓰지 말고 대강 2년만 일하다 헤어지자. 거기서 저는 대강 일하지 않았고 4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좋은 기억과 그렇지 않은 기억이 극단으로 나뉘는 곳이었습니다. 팀장님이 스스로를 "호구"라고 칭해서 생각이 났습니다. 정녕 호구였다면 애초 이런 글은 단 한 줄도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팀장님이 진짜 호구라면 제가 겪었던 거의 모든 팀장들은 땅그지 같은 존재들일 것입니다.


팀장님은 같이 점심을 먹고 매일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고 취미를 공유하고 본인의 거의 모든 라이프스타일을 노출했습니다. 업무도 그랬습니다. 투명에 가까웠고 은폐나 오해의 여지가 적었습니다. 묻는 것은 상세히 알려주고 자기도 모르는 것은 남에게 물어서 알려주거나 방법이 없을 땐 시간을 두고 같이 찾기도 했습니다. 다른 팀장들도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겪어온 팀장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지나온 그들을 낮추어 팀장님을 비교우위에 둘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팀장님과 몇 해를 지나며 지난 팀장들이 할퀸 과거의 흉터들을 그나마 잠시 잊거나 자주 덮을 수 있었습니다. 이건 긍정적인 경험의 누적으로 인한 사고의 전환으로 가능한 부분이기에 사회생활 내에서 이런 치유가 이뤄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걸 겪었고 팀장님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상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이만큼 감지되는 건 그만큼 제게 감지되는 배려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쓰고 싶은 카피와 내고 싶은 아이디어 속에서 원하는 제안서를 만들고 좋은 결과에 이른 적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빛의 속도로 쓴 내용을 번개 같은 영상 결과물로 도출한 적도 많았습니다. 표현이 유치하죠. 우리는 유치한 농담으로 공공의 적을 숨어서 욕한 적도 많았습니다. 우리는 유치했고 내일부터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팀장님은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만큼 타인에게 관대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타인의 흠결을 오래 기억하고 자신의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철저히 변호합니다. 팀장님의 이름 뒤에 팀장님이라는 호칭이 붙을 때 그건 대다수에게 무거운 지위이자 고요한 압박을 상징합니다. 팀장님도 그랬을까요. 팀장님도 어떤 팀장들처럼 으스대고 군림하고 비겁하고 떠넘기고 도망쳤을까요. 지위의 벽 뒤에 숨어 비극이 끝나길 기다렸을까요. 팀장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팀장님에게도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건 태양의 흑점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태양이 태양으로 불리기에 아무 지장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잠시 내려앉은 먼지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쌓일 겨를도 없이 불면 날아갈 수준이었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팀장님의 부족함이나 연약함은 그 자체로 어떤 결여나 약점이 아닌 공감과 연민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스스로의 노고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부족한 점은 적나라하게 한탄하고 돌아보고 반성하고 자조하고 어떤 면에선 웃기고 어떤 면에선 동질감도 든 적이 많았습니다. 겪어온 다른 팀장들이 이 수준까지 도달했을까요. 이 수준은 낮게 허리를 구부린 리더만이 획득할 수 있는 훈장과도 같은 영역입니다. 대부분은 굽히지 않으려고 하기에 대부분은 도달과 획득에 실패하곤 합니다.


오늘 점심이 팀장님과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습니다. 얼마나 더 멍해져야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내일 아침에 팀장님 자리가 비어있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다른 내용으로 다시 편지를 드릴 날이 있을 듯합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천 번의 인사로도 부족하겠지만 그동안 진정 고마웠습니다. 팀장님은 최고의 리더였습니다. 앞으로 제가 몇 명의 팀장과 더 함께할 수 있을까요. 백 명이든 백만 명이든 순위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팀장님의 순위는 내려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팀장님은 내일부터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맺는 지금까지도 이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2023. 12. 18.



P.S

마지막 선물의 영역이 좁아

다 새겨지지 못했던 내용을 여기에 적습니다.


팀장님,

지난 4년 동안 당신은 저에게

세상 그 어떤 팀장들보다 온기와 공감,

유머와 배려, 성실함과 세심함,

업무적 탁월함과 희생정신이 가득했던

동시대 최고의 리더이자 동료였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내내

늘 고마웠고 의지가 되었으며

너무 행복했습니다.


팀장님과 나눈 모든 대화와

함께 웃었던 모든 순간이

사무치게 그리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