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었다

by Glenn

겨울이 다른 계절보다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뭔가 끝나기 때문이다. 시작은 어느 계절이든 가능하고 또 어울리기도 하지만 끝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결정적인 것들은 겨울에 끝난다. 이건 그저 생각을 멈추거나 감정을 추스르거나 즐겨보던 미드가 막을 내리거나 정도가 아니다. 그동안 일정한 패턴을 지니고 있던 일상의 일부가 격렬하게 파괴된다. 얼마 전 도로시와 본 지구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는 소행성 하나가 충돌해 지구의 거의 모든 생명체들이 사라진 장면을 재구성해서 보여주었다. 겨울에 파괴되는 일상의 여파가 그 정도다. 하나의 사건이 한 시즌을 넘어 동선과 관계의 안정성을 모조리 뒤흔들 수 있다. 이런 불안 속에서 추위와 어둠은 얼마나 잘 어울리나. 낭만 같은 건... 겨우 생존한 자들이 지금은 곁에 없는 부재한 자들을 떠올릴 때나 꺼내보는 한때 좋은 시절에 남겨 놓은 꾸깃한 메모 같은 것. 죽고 사라진 황폐한 공터에 색색의 온기는 없다. 보이지 않는 구석엔 온통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떨며 흘리는 흐느낌들로 가득하다.


돌아보면 몇몇 겨울 시즌은 늘 어떤 사건의 체계적 연대보다는 파편화된 감정과 흉터로 각인되어 있다. 처절하게 혼자인 채로 어디로든 가야 했다. 방향을 미리 정하지 않았고 허둥지둥 챙길 종이 뭉탱이의 종류도 알지 못했고 가긴 가야 하지만 왜 가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 같지만 누구 탓을 하든 어떤 해결책도 될 수 없는 서늘한 막막함과 갑갑함, 가시지 않는 고립감, 하나의 답을 고민할 때마다 열 개의 다른 문제들이 도출되는 전대미문의 연쇄현상, 낯선 시도와 절망적인 결과의 반복, 중얼거리지만 아무 도움 되지 않는 낙관과 (존재한 적 없었던) 희망, 아무도 듣지 않는 혼잣말, 아무도 읽지 않는 저주, 아무도 관심 없는 메일,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아무개들, 사이에서 깊고 고요하게 헉헉거리는 한숨들, 늘 이럴 때엔 더욱 어색해지는 커피 주문할 때의 목소리, 늘 웅성거리고 북적이는 먼저 온 대기자들, 도무지 왜 시켰는지 자책하는 신메뉴들, 인사를 피하고 혼자 걷고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더 늘어나고 더 자주 상상하게 되는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색의 미래들.


말이 내 인생이지, 내가 정한 것들이 얼마나 되나. 온전히 내가 정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는 한가. 타인의 윤허 없이는 단 1원도 벌 수 없다는 현실을 언제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르는 곳으로 가지 않고 더 부를 때까지 미동하지 않는 태도는 선택인가 순응인가. 성냥팔이소녀의 마지막 성냥 같은 신기루를 언제까지 상상할 수 있을까. 불이 꺼지면 (눈밭 위에 포개진 몸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잠들기 전 의식을 더듬거리며 이 글을 쓴다. 이번 겨울은 어떤 과거형이 될까. 과거로 돌아볼만한 새로운 겨울이 오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