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
스케일로 스토리를 덮을 수 있다는 환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수많은 우주 행성들 중에서 하필이면 지구를 노리고 있는 외계인이 다시 침공한다. 지구인들은 과거의 영웅들을 다시 모아 대책을 논의한다. 그 사이에도 지구는 가루가 되기 직전이다. 20년 전보다 훨씬 문명이 고도화된 인류의 도시는 하늘과 바다를 뒤덮는 속수무책 공격에 붕괴되다 못해 빻아진다. 그 사이 건축술은 제자리에 머물고 CG 기술만 현란해졌는지 화염에 휩싸이거나 거대한 힘에 이끌려 공중에서 산화되는 장면이 오랫동안 시선을 사로잡는다. 악취미. 스크린 속에서 인류라는 타인들은 그렇게 소멸된다. 가족이 땅 속 끝으로 추락하고 동료가 탄 전투기가 폭발한다. 어차피 인류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외계인과 싸우고 다수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모든 등장인물들에겐 온통 비장함 뿐이다. 칼이든 총이든 지성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동원해 당장이라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나의 계몽영화와도 같다. 절체절명의 위기는 언제든 닥칠 수 있고 세상엔 의인이 이렇게 많다는 예비군 교육에서 흔히 듣는 반공교육 같은 이야기. 다들 스스로를 구하기보다는 남을 위해 자신을 던지기 여념이 없다. 이를 위해 필요한 익숙한 장면들. 영화 전체에 클리셰가 차다 못해 넘친다.
내가 아는 인간은, 내가 아는 인간을 제대로 다룬 영화들의 인물들은 이렇게 납작하지 않았다. 죽음의 위기 앞에 솔직했고 다들 앞서 나와 대신 죽기보다 자신의 생존을 본능적으로 챙기고 싶어 했으며 희생이 필요할 경우 극도의 스트레스와 고뇌에 휩싸였다. 이것이 재난 앞에서 납득 가능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마치 정자와 난자일 때부터 장착하고 나온 듯한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모습이 아닌, 겁먹고 두려워하며 도망치고 싶어 하는 인간. 인디펜던스 데이 같은 영화에서 이런 면을 기대하는 것은 홍상수 영화에서 도심 총격전을 기대하는 것과 같은 걸까.
이런 유의 재난 영화에서 외계인이라는 미지의 적의 능력은 늘 비상식일 정도로 무한대였다. 이번처럼 인류가 스타워즈와 트랜스포머에 버금가는 전투력으로 무장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방법은 늘 찾았지만 남는 건 허탈감뿐. 할리우드가 망하는 순간부터 외계인은 지구를 공격할 일도, 소수 인류에게 구원을 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인상적인 부분이라면 비극을 화려하게 그려내는 기술이다. 도시가 무너질 때, 현실이라면 분명 누군가 팩스를 보내거나 미팅을 하고 있을 빌딩이 사그라질 때, 더 눈에 띄었던 건 화염의 크기와 솟아오르는 콘크리트의 질감, 우주선을 품고 있는 위협적인 구름을 담은 풍경이었다. 세상은 불꽃놀이처럼 잘 마른 장작처럼 잘도 망하고 있었다.
감독은 다시 영화를 만들 것이고 비슷한 궁금함을 지닌 나 같은 이들은 다시 찾아볼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만약의 상황에서 나와 우리가 아닌 불특정 다수가 어떻게 허둥지둥하다 죽는지 궁금하니까. 인간은 없고 캐릭터만 있다. 재난만 있고 명분이 없다. 현실은 없고 영화만 있다. 그의 모든 영화가 이렇지 않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공통분모는 항상 있어 왔다. 이런 전시적인 면들이 모여 롤랜드 애머리히라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3편은 안 볼 것 같다. 또 한 번 미국 대통령이 세상을 구하겠지.
영화에 대한 어떤 글은 길고 간절한 경고문과도 같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