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오브 트리스, 죽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

구스 반 산트 감독. 씨 오브 트리스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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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었다.
숲에서. 아니 삶에서.
아내가 죽었다.
같이 살던 내내 싸우던 사람.
죄책감에 견딜 수 없었다.
가장 완벽한 장소에서 죽겠다는
약속을 지키러 이곳까지 왔다.
일본. 거대한 숲.
한없이 걷다가 자리를 잡고
약병을 열고 한 알 한 알 삼키는 순간
어떤 남자를 보았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죽을 듯한 몰골이었다.
그를 부축했고 옷을 벗어주고

나가는 길을 안내했다.
하지만 나가는 길을 잃고 말았다.
그와 이야길 나누며 숲을 헤맸다.
그도 이곳까지 죽으러 올 수밖에 없었던
답답한 사연을 안고 있었다.
숲은 끝으로 안내하지 않았다.
비를 퍼붓고 부상을 입혔으며
온몸을 즉사 직전의 상태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 사이 침투하는 아내와의 기억들.
나는 무능력했다.
나는 내 삶의 가치만 추구했고
아내의 피로를 외면했으며
그녀의 요청에 반발했다.
싸움은 끊이지 않았고
그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내가 먼저 일찍 죽었더라면
아마도 아내는 조금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병에 걸린 건 아내였고
목숨을 건 수술을 받았으며
겨우 희망을 찾았지만 그마저도
순식간에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지금 세상에 없고
남은 건 나뿐이다.
이곳으로 죽으러 온 나뿐.
숲이 나를 살해해주길 원했다.
나뭇가지에 걸린 시체처럼
텐트 속에 누워있는 해골처럼
나의 목숨을 가져가 주길.
구해준 남자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고
나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며
구조를 요청하러 떠났다가
다시 반죽음의 상태가 되었다.
내가 살아 돌아간다고

아내는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나의 구조요청만을 기다릴지도 모를
저 남자는 죽겠지.
나는 길을 잃었고
여기서 죽어간다.
아내가 죽었고
다른 남자도 죽어가는 중이다.
숲은 말이 없다.
숲에 영혼이 머문다는

말이 아른거리지만
그게 정말일까.
아내에게 가고 싶다.
나는 용서받지 못했고
숲에게 벌을 받으러 온 것이다.
아내보다 먼저 죽지 못한

죗값을 치르기 위하여.







여전히 모르는 인간에 대한 영화적 물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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