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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Feb 16. 2024

오랜만에 할머니를 만난 이야기

모든 기억이 글이 될 필요는 없다. 잔상은 잔상 자체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미지는 글로 옮겨지지 않으면 영영 폐기된다. 되살아나지 않는다. 나중에 어떤 불씨가 살아나 화르르 번질 거라는 환상은 늘 망각과 함께 사라졌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서 계속 반복한다. 그래서 종종 많은 이미지들은 서투르더라도 글로 옮겨져야 한다. 결국 이런 것들이 모여 쌓여 조립되어 나와 나의 세계와 나의 시간을 보다 입체적으로 온전히 이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정된 정보로 스스로를 착각하고 누적시키는 일의 영향력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특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일들이 많다. 사람들의 수명,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상황, 과거에 마주하지 못한 아쉬움, 그리고 언젠가 원하지 않는 소식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번 설에 너무 오랜만에 나의 할머니, 이여남 여사를 만났다. 그는 내 현재의 삶을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여성이다. 


평소에 밟으면 2시간 거리.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한 우리는 오전 11시에 목적지에 겨우 근접할 수 있었다. 암흑 속 직진 신호에서 좌회선을 하려던 정체불명의 헤드라이트가 우측에서 경적을 울리며 돌진해서 사고가 날 뻔도 했다. 집 앞에서 대기하던 아빠를 동승석에 태우고 큰집으로 향했다. 예상보다 북적거렸다. 각자 태블릿을 하는 아이들, 식탁에 둘러서 이야기하는 친척들,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반갑게 재회한 정화, 어색한 표정으로 느릿하게 다가와 도로시의 정체를 묻는 큰 아버지, 그리고 나의 할머니. 한때 이곳은 내가 어렸을 적 거의 매일 같이 들락거렸고 1년 넘게 살기도 했으며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다 큰 자식들 학교, 취업, 결혼으로 분리되고 두 부부만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큰어머니 큰아버지, 두 분은 돌아가시고 지금은 두 분만 계시다. 그중 한 명이 할머니. 나의 할머니 이여남 여사. 그의 방으로 가서 몇 번을 끌어안고 볼을 비비며 인사했다. 오래전 한때 엄마 없이 할머니가 데리고 다니는 초등학생 손자가 눈부시게 웃는 귀여운 도로시와 수려하고 기품 있는 아내를 데리고 온 날이었다. 할머니는 우셨다.  


마른 뺨, 마른 손, 가녀린 어깨. (당연히) 세월의 흔적이 보였지만 나보다 더할까. 여전했고 여전히 나의 할머니였다. 마른 눈가가 젖고 있었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도로시는 어색하게 앉아 있다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아내도 인사를 나누러 자리를 옮기고 나는 할머니와 오랜 인사를 나눴다. 너를 옆에 끼고 맨날 데리고 다녔는데... 정말 그랬다. 중학교 전까지 또는 초등학교 6학년 오토바이 사고로 입원하기 전까지 친척집으로 향하는 많은 외출을 할머니와 다녔다. 할머니는 다시 만났을 때도 종종 통화할 때도 그 이야기를 했다. 늘 너를 데리고 다녔다고. 용돈, 사탕, 과자...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받기만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는 나를 가엾이 여겼고 나는 그런 이미지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할머니는 일 년에 며칠 서울 고모들 댁에 올라오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전해 들었지만 매번 뵙기는 힘들었다. 연세에 비해 정정하다는 이야기만 들을 뿐.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빠에게 (늘 갑자기지만) 갑자기 전화가 올 때도 혹시 할머니가...라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린 적이 많았다. 요즘도 그렇다. 그런 할머니를 이렇게 오랜만에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저 다행이었다. 할머니는 큰집을 나서며 안녕 인사할 때까지 눈물을 훔쳤다. 나는 웃음기 어린 얼굴을 굳이 그늘로 덮지 않았다. 이게 할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일까 라는 생각은 깊게 하지 않기로 했다. 


할머니의 방을 생각한다. 한쪽벽을 가득 채운 오래된 자개농, 또 한쪽벽을 채운 서랍장, 또 창쪽벽을 채운 침대, 침대가 있던 자리는 할아버지도 계시던 자리였다. 지금은 할머니 혼자 그 자리에 누우신지 스무 해도 넘었다. 천장 가까운 높이의 벽에 그득히 줄 서 있는 할아버지 사진과 둘이 낳은 형제자매의 결혼사진들, 손녀손자와 같이 찍은 오래전 사진들, 낡은 벽지, 그 위에 삐뚤삐뚤 연필로 쓴 글씨들, 따뜻한 전기장판과 이불, 저기 걸린, 구석에 60도 눈높이로 대각선 허공을 바라보는 수염 난 장발 백인 예수의 이미지가 담긴 액자, 이번 설에는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그가 없었으면 나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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