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올 한 해, 난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썼다. 문학적 성취나 역사적 사명을 위해 펜을 잡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한 글을 썼다. 사람들이 형형색색의 이미지와 맞물린 글자들과 마주하는 순간, 사물의 이미지와 메시지가 순식간에 이성을 마비시켜 그들의 지갑을 활짝 열고, 그들의 지폐가 앞다투어 나와주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았다. 그들의 돈이 내 주머니로 곧바로 들어오는 일은 없었으나, 목적은 그것이었다. 그걸 이뤘다는 모두의 합의가 이뤄지는 순간, 한 곳에 모인 계약된 동지들과 함께 웃었다. 그리고 때론 홀로 만족했다. 이것으로 돈을 벌기 위한 글의 임무가 완수되었다 여겼다.
궁금해졌다. 정보에 대한 타깃들의 허기와 시대에 부합하는 단어를 찾아낼 수 있는 명민한 능력, 그리고 돈으로 돈을 벌기 원하는 이들의 밑도 끝도 없이 지루한 욕망이 합쳐진 결과물에 과연 내 것이라는 게 존재했었는지를. 대체 난 언제부터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있었던 거지? 내 손끝을 스칠지언정 마지막 단계에선 지문의 흔적마저 찾을 수 없다는 반복학습의 결과. 난 어느새 저항과 부닥침을 피하는 법을 습득, 간교히 이행하고 있었다. 난립하는 주장과 소모적인 대결에서 빗겨 나 오로지 비겁한 Win-Win 만을 일궈내길 빌고 또 빌고 있었다. 결정권자는 극소수였고, 그들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돈독히 이어 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내게 맡겨진- 일은 놓으면 날아갈 듯 가냘픈 A4 위에 불면 흩날릴 듯 연약한 레이저 잉크로 박아 넣은 몇 개의 쉼표와 마침표뿐이었다. 애석하게도 내 손을 떠난 순간부터 그것들은 늘 공중분해와 전신성형의 운명 앞에서 끝끝내 자신을 지켜내지 못했다. 난 주검을 부여잡고 한참을 넋을 놓는 일에 익숙해져야 했고 약자의 창조물 역시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씁쓸한 진리를 깨닫기 시작했다. 언젠간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과정을 반복시켜야 한다는 것도.
결코 거짓은 쓰지 않았다. 그것은 범죄니까. 이 또한 만약에 발생할지 모를 금전적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나온 계산된 안전장치긴 하지만 말이다. 과장된 진실이 글과 그림으로 엮여 관심을 유도한다. 욕망을 자극하고, 행동을 촉구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레테의 강을 넘었을까? 혹자는 이럴지도 모르겠다. 난 태어날 때부터 자아와 의지가 강해 상업적 광고와 마케팅 전략에 절대 현혹당하지 않는다고. 허나 억울하게도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곧 어느 누군가가 짜 놓은 전략의 일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보류하더라고 장차 있을 또 다른 어떤 선택을 위한 예상된 준비기간으로 여겨진다.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또 다른 선택의 하나일 뿐이다.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통제하고, 소비를 위한 선택의 순간을 조종하기 위해 기업은 예산, 인력 등 갖은 수단을 총동원한다. 그리고 광고는 그중 가장 많은 포장지를 사용해 선두에 선다.
난 이 포장지의 문구를 작성했다. 세상 사람들이 이 거룩한 한 줄 앞에 경의를 표하며 자신의 신용카드를 앞다퉈 헌납하길 바랐다. 세계가 칭송하며 황금으로 만든 사자 트로피를 안겨주기 바랐다. 감동하고 감화되어 변화와 변혁의 바람이 모든 이의 마음과 육신 속에 휘몰아치길 바랐다. 무쇠로 만든 칼날과 총알보다 키보드의 힘이 더 세다 믿었고, 아무리 강한 빗줄기에도 이 뜨거운 야심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을 거라 믿었다. 초심이었다. 과거형으로 자연 변이 중인 쓸쓸한 어제의 단편이었다. 순수를 섬기면서도 난 일부분 퇴화하고 일부분 진화했다. 용불용설, 적자생존설의 어두운 사례로 회자되지 않기 위해 고단한 노력을 통해 균형을 유지했다. 그 과정에서 참 많이도 기도를 빙자한 혼잣말을 했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주님 함께해주세요.’ 등 깨끗지 못한 혀로 신의 이름을 되뇌었다. 속죄를 노린 비겁한 노림수였다. 난 하루도 빠짐없이 십자가 앞에서 눈치 보며 죄를 서슴지 않는 변절자였다.
한때 어떤 연유로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 여자 친구가 이런 말을 남긴 적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끝에 다다랐을 때, 오늘처럼 우리가 함께 있지 못하면 어쩌나 두려워져.’ 메모를 읽을 당시, 그녀의 심정이 곧바로 전이되었고, 심장이 무거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의 위압감을 오늘과 어제, 가정된 내일을 통해 다시 경험하고 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파고드는 수많은 질문들에 에워싸여졌을 때, 견딜 수 없이 길고 비참한 침묵 끝에 결국 나의 무능함을 시인해야 할 날이 올까 봐. 그때 나를 변호해줄 사람이 나 밖에 없을까 봐. 하지만 뿌리치고, 내던지고, 도망칠 수 있더라도 이것은 이미 일상, 마지막 날까지 겪어야 할 자초한 숙명.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련과 자학의 그물. 스스로에게 사로잡혀 도마 위에서 매일같이 칼날을 향해 돌진하는 생선 대가리. 밥벌이를 위한 거창한 명분을 위해서라도 내년엔 더 과감하게 죽을 수 있기를. 끝내기 전까지는 끝낼 수 없는 전부를 건 생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