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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pr 14. 2024

자전거로 처음 날아가는 도로시의 기분에 대하여

보조 바퀴가 달린 분홍색 자전거가 오랫동안 세워져 있었다. 그동안 도로시는 킥보드를 더 많이 탔다. 내리막길에서도 속도를 즐기고 코너링도 자유로웠고 나는 그 옆에서 같이 달렸다. 중심을 잃으면 잡아줘야 하니까. 얼마 전 우리는 도로시 친구가 양 발이 잘 닿지 않는 높이의 자전거를 타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쉽게 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우리의 자전거가 생각났다. 우리는 오랫동안 세워져 있던 자전거를 차에 태우고 커다란 공원과 운동장이 같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자전거를 차에 싣는 건 처음이었는데 쉽지 않았다. SUV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준중형 세단 트렁크에 접이식이 아닌 자전거를 싣는 건 난이도가 높았다. 아무리 각을 살펴봐도 트렁크가 잘 닫히지 않았다. 겸사겸사 스패너로 보조바퀴를 떼고 트렁크 내부의 박스 몇 개를 앞자리에 옮기고 겨우 넣었다. 공원에 도착해 자전거에 앉았을 때 알게 되었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없다는 걸. 흠. 


앞바퀴 뒷바퀴 둘 다 없었다. 그동안 거의 타지 않았으니 자연적으로 빠진 것 같았다. 납작하게 펑크 난 수준은 아니라서 양쪽 핸들을 잡고 중심 잡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페달을 밟고 구른다고 해도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공원 주변의 타이어 공기 충전기를 찾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그동안 도로시와 아내는 챙겨 온 축구공으로 운동장에서 놀기로 하고. 가장 가까운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았지만 없었다. 커뮤니티 센터(관리실)에 가서 물어보려고 했지만 잠겨 있었다. 밖으로 나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놀이터 주변으로 향하다가 자전거 주차장을 발견했다. 구석에 노란색 소화기처럼 공기주입기가 있었다. 매우 낡아 있는 상태였다. 공기주입구가 우리 자전거와 맞지 않았다. 수십 분 낑낑대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날은 대신 축구공으로 더 오래 패스하며 놀았다. 새벽에 도착하는 에어펌프를 주문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에어펌프를 가지고 공기 주입을 시도했다. 일단 소음이 커서 지하 주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간 노즐이 없어 공기가 새어서 동봉된 부품을 찾아 헤매야 했다. 휴대용 전기 에어펌프의 소음과 함께 공기가 주입되고 타이어가 빵빵해졌다. 그래 이거지...  바깥은 밝고 따뜻했다. 도로시는 기대와 긴장을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집 주변 자전거 도로와 가까운 학교 작은 공원은 한산했다. 어제의 도로시는 주춤주춤 중심 잡느라 들렸지만 오늘의 도로시는 모든 게 더 나아진 것 같았다. 흔들림은 줄어들고 중심이 잡히고 페달에 올린 발은 서서히 움직이고 속도가 늘고 있었다. 더 이상 곁에서 중심을 잡아주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난 조금씩 손을 떼고 거리를 두고 곁에서 자전거 속도에 맞춰 달렸다. 도로시는 혼자 달리고 있었다. 최초로 자전거 위에서 중심을 잡고 달리는 순간이었다. 


힘, 시선, 균형 감각, 근육의 움직임,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다. 난 끊임없이 곁에서 너무 잘하고 있다고 소리쳤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도로시는 온전히 혼자 힘으로 해내고 있었다. 자신의 걷거나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바닥을 차며 나아가는 킥보드와는 다른 체감으로. 도로시는 얼굴과 몸으로 날아오는 바람을, 자신이 만든 속도로 다가오는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얼마나 황홀할까. 스스로 성취하는 속도란 얼마나 짜릿할까. 도로시는 너무 재밌다는 말을 계속했다. 온몸이 긴장하고 있을 텐데 커진 눈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멈추지 않았다. 조금 비틀거려도 다시 나아갔다. 나는 서둘러 브레이크 잡고 세우는 법을 알려줬다. 앞에 사람이 있거나 횡당보도를 건너기 전 반드시 멈춰야 할 때 속도를 줄이고 브레이크 잡는 것에 대해 강조했다. 이제 두 발이 땅에 충분히 닿을 만큼 키가 자라서 몸으로 바로 알아듣고 실행했다. 악력이 좋아서 브레이크를 잘 잡았고 발을 땅에 디디며 자전거를 안정적으로 멈췄다. 익숙한 사람들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나와 도로시는 어제만 해도 운동장에서 옆으로 완전히 쓰러져 바닥에 몸을 부딪치는 -자전거에 타고 있던- 어떤 어른을 봤었다. 그전부터 도로시에게 강조하고 있었다. 어른도 넘어지고 쓰러지고 부딪치고 비틀거린다고. 네가 지금과 앞으로 겪을 실수나 넘어지는 일은 모두에게 너무 흔하고 당연한 일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계속 반복하며 강조했다. 도로시는 알아들었다. 중심을 잡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뿐 포기하지 않고 두려움을 넘어 스스로 달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도로시의 머리와 마음속에 얼마큼 커다란 즐거움이 부풀었는지 그 크기를 가늠하지 못한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자신의 힘과 신체가 가능했던 기존 속도를 훌쩍 뛰어넘는 경험이었으니까. 도로시와 길고 다양한 소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며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인지 실감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모든 것들을 충족시켜 줄 수는 없어도 가능한 것들 내에서는 남김없이 채워주고 싶다.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최초이자 마지막이고 다시 이어서 최초이자 마지막인 모든 순간이 이어진다. 우린 한동안 자전거의 스피드와 바람을 만끽할 것이다. 도로시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내가 곁에서 도와줄 것이다. 함께하는 모든 장면과 감정을 사진과 글로 남길 수 없지만 이번 자전거만큼은 기록하고 싶었다. 도로시는 점점 더 크고 복잡한 과정에 익숙해지고 기꺼이 자신의 컨트롤 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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