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한다고 해결이 늘 빠른 건 아니니까
단언하기 지나친 감 없지 않지만, 지나온 시간들과 오늘의 위치에 대해 어떤 불평이나 후회는 없다. 시행착오는 늘 있어왔지만. 가장 나다워지려는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의 부릅뜬 눈과 움켜쥔 주먹을 닮고 싶었다. 훗날, 들려주기 위한 생보다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은 시간으로 채우고 싶었다. 반복과 수긍, 냉정과 인내로 살아내기엔 문득 주어진 날들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켜켜이 쌓아둔 불만들. 불투명 유리로 가려진 내일에 대한 불안이 평화로운 일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내일도 반복할 자신이 있냐고, 어쩌면 이건 진로상담을 갈망하는 혼잣말일지도 모른다.
화장실과 점심을 거를 정도의 바쁜 업무로 스스로의 시간과 고민을 돌볼 기회가 없었다는 해명이 50년 후에도 유효할까? 그래 너 참 그때 정신없었지 토닥거리면 억울함이 무마될까? 통장의 넘치는 여유와 머리를 조아리는 후손들로 해갈이 될까? 내가 지금 누구인지 주변을 통해 확인하는 - 마치 선택은 자신이 했지만 판단은 타인에게 양도한 듯한 - 모양새가 과연 모두를 위한 행복의 지름길일까? 대체 어째서? 한없이 높아져가는 결핍의 똬리. 누가 도와줄 수 없다면 스스로라도 도와야 할 거 같아. 누구도 들어줄 수 없는 말이라면 스스로라도 들어줘야 할 것 같아. 공유한다고 해결이 늘 빠른 건 아니니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고민의 시간을 확보해야 할 거 같아. 나침반은 없어. 홀로 별자리를 보며 다음 행선지를 정해야겠어.
글이 문제의 근원 인적은 없었다. 지금은 다만 해결의 열쇠가 될지 궁금하다. 내가 글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각한 일기 정도로, 제한된 상상력으로, 조잡한 견문으로, 무엇을 더 쓰고 보여주고 누굴 더 이롭게 할 수 있을까? 다음 단계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는데, 이를 기록으로 남긴들 현재에 어떤 보탬이 될까? 과연 과거와 미래가 유기적이긴 한 걸까? 결국 내게 일어난 또 내게 일어날 대부분의 일들은 우연과 타인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변화를 원한다면 자신을 믿을게 아니라 결국 내게 없는 보이지 않는 힘에 기대어야 하진 않을까?
세상의 어떤 어른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시도하지 않는 이들에게 굳이 안 해도 그만인 말들로 불가능을 권유한다. 열심히 한 것에 대한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지만 가끔은 내가 있는 자리에 앞으로 있어야 할 곳에 대한 선견과 지명은 조금 가지고 있었으면 한다. ‘잠재력’과 ‘가능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눈으로 보이고 손으로 만져졌으면 좋겠다. 빚어서 계단을 만들고, 올라가 원하던 의자에 앉았으면 좋겠다. 계속되는 환상, 실없는 희망 따위 보다 내가 나에게 떳떳하고 싶다. 이게 다일 순 없으니까 여기서 끝이면 안되니까. 탐욕이라 불리더라도 부수어 움트고 싶다. 내년 이쯤에도 이런 허약한 소릴 지껄이고 있다면, 허리는 더 굽어있고, 표정은 더 간교해져 있을 테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벗어나겠다. 입만 나불대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