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나는 완벽한가
자책으로도 문제가 답에 이르지 못했을 때, ‘내가 아닌’ 다른 이유를 찾습니다. 다른 대상을 찾습니다. 비슷한 상황과 기분에 처했을, 다수의 입장을 대변할 어휘를 찾습니다. 뭔가를 말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닌, 어떤 불순한 의도도 내포하지 않은 연약한 스스로를 위한 행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엉킨 매듭이 또다시 숨구멍을 조여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수는 모두가 예상한 모든 경우의 수를 비껴나갑니다. 공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대다수 공감대를 이룹니다. 염려되는 건 변수에 대한 대처능력이나 예측력이 향상되긴커녕, 제자리걸음과 퇴보를 축적해가며 균열과 침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거냐고 묻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진심일까요. 답해주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한순간의 방심과 실수가 아닌, 수수방관과 귀를 막은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으면 어떤 표정으로 모면할 수 있을까요.
불만을 토로하고 답답함을 토해내도 시원하지 않은 건, 이번이 두 번째 세 번째도 아니며 반복에 반복을 이어온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일 저조한 성적이 나오는 이유는 운이 나빠서가 아닌 잘못된 습관 탓임을 제대로 납득하지 못한 듯한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타협은 더 이상 성장의 필수 에너지가 되지 못합니다. 익숙함에 길들여지면 다른 결과는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고민의 방향을 매번 바뀌지 못하면, 결국 보게 되는 것은 과거의 영광을 답습한 초라한 단어들뿐, 스스로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상황도 결과를 바꾸지 못합니다.
시스템의 중추를 이루는 이들에게 감히 청하는 건, 경험으로 축적된 놀라운 지혜를 넘어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시도를 향한 저돌적인 모습입니다. 단순히 낯섦과 처음이라는 자체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을 넘어, 또 다른 발견과 진보로 나아가는 강력한 점화장치. 이끌리지 않고, 조용히 이끌어 나감으로써 초연한 자세로 선두에 이르고, 변화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라는 반대 이유가 수백만 가지 존재하지만, 남의 허울처럼 살아가는 일상이 아닌 함께 사는 생명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으려면, 거듭되는 고민보다 실천의지를 불사르는 태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는 나는 완벽한가 라는 물음 앞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모순과 여전히 완결되지 못한 사건과 사고로 가득 찬 세계 안에서 그 어떤 자격도 제대로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라고 불려지는 단 하나의 집단에라도 속해있다면 의견을 말하고, 비루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의지를 표명하는 ‘이런’ 권리쯤은 기꺼이 누려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투박한 표현과 엉성한 논리로 인해 진심과 열의가 부메랑이 되고 양날의 검이 될지 언정 공개된 논의와 협의는 늘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좁디좁은 테이블 위에서라도 나이와 직급과 성별과 분야를 넘어 더 나은 생각과 새로운 사상이 공유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훗날, 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결코 부끄러워지지 않기를. 지금보다 조금 더 당당하고 조금 더 겸손하며 더 이로운 사람이 되어있기를 또한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