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여기서 이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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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없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날
단 하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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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우울, 값없는 언어들,
난 왜 여기서 이 짓을
모든 결핍을 축적해가며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자책이 이를 수 있는 한계를 시험해보려고?
모순된 언행을 몸소 체험해보려고?
지켜지지 못한 약속과
지켜질 수 없는 약속 사이에서
이 과정을 경험으로 깨닫는 것은
끔찍한 고통이 뒤따른다
매시간 몸과 마음이
동시에 산산조각 나고 있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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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지지 말자
마지막 날까지
단 한 줌의 후회도
남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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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생각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기괴한 구조의 의사결정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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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도 없고 바람도 없고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어
난 다 걸었고 여기까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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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라고 하지 마라
조금만 더라고 하지 마라
힘내라고 하지 마라
괜찮을 거야 라고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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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벽을,
닥치는 모든 반대를
일일이 상대하려
넘으려 이기려 하지 말자
파도가 아프더라도 맞자
바람이 무척 시림에도
깃을 여밀 힘조차 없다면
그냥 버스를 기다리자
비슷한 상처와 슬픔을 안은
비슷한 표정의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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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에너지가 소진되었을 땐
마음의 에너지를 빌려온다
마음의 에너지가 소진되었을 땐
몸의 에너지를 빌려온다
문제는 양쪽의 에너지가 모두
바닥에 이르렀을 때다
그때부터 중력과 대기의 압박이
뼈와 살을 으스러뜨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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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피라이터의 고백을 쓸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위로도, 어떤 응원도
어떤 좋은 말도, 어떤 따끔한 말도
듣고 싶지 않다
원하지 않는다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