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 상실의 시대

6년 전 글

by 백승권

애플은 새로운 종족을 창조했다. 수많은 이들이 동참했다. 경쟁기업들도 따라 하기 여념이 없었다. 대세라고 했다. 언론도 받아쓰기 바빴다. 아이폰으로 상징되는 스마트폰은 시대를 바꾼 기술혁명이자 모든 문화의 중심에 선 듯했다. 최초의 휴대폰이 생긴 이래, 사람들은 외로움을 견디는 비법을 발견한 듯했다. 사소한 안부를 묻는 전체 문자는 난 지금 혼자이고 연락할 이는 아무도 없으며, 받는 사람들 중 누구라도 내게 널 알고 있다는 표시를 보내달라는 뜻으로 인식되었다. 또는 게임을 하거나, 셀카를 찍으며 내가 지금 너(휴대폰)와 함께 있음을 확인했다.

스마트폰은 정점이었다. 어플은 지도검색과 교통수단 체크 등의 정보가 주는 편익 외에도 각종 게임이나 테스트, QR코드 인식 기능을 통해 혼자 노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둘이 만나면 폰의 기종을 물어보고, 셋이 보이면 어플을 비교했다. 열댓 명이 넘게 모인 자리에서 반 이상이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오락기 또는 인터넷 기계가 된 컴퓨터 대신 스마트폰은 사람들을 감탄시키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첨단 문명의 리더가 된 듯한 체험을 하며 자신이 스마트해졌다고 여겼다. 공공장소에서 스마트폰을 쓰는 이들의 어깨와 눈빛에는 '신문명인을 자부하는'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곧 스마트폰이요, 스마트폰이 곧 나이니라 라는 당당함이 대한민국 모든 장소를 스마트폰의 점령지로 만들어 버렸다. 같이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아는 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나와 같은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지, 어떤 새로운 어플을 알려줄 수 있는지 관심사는 그것뿐이었다. 서로가 '스마트인'임을 인증하는 절차가 2010년 대한민국의 신인사법이 되었다. 스마트폰이 없다면 눈인사조차 나눌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이폰4를 산 후에 이런 주제를 풀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점점 스마트폰이 가져온 보이지 않는 무례와 횡포들에 정나미를 잃어가고 있다. 나도 저런 감정을 행여 누구에게라도 전달하게 될까 봐 구매 여부를 다시 숙고하고 있다. 스마트폰 유저가 아닌 입장에서 쓰는 건 관점의 형평성에 어긋날지도 모르지만, 이미 아이팟 터치를 보유하고 있기에 기능이 가져다주는 혜택에 대해선 오히려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애플이라는 브랜드가 사용자에게 심어주는 미묘한 우월감 또한 익숙하다. 삼성의 최신 휴대폰을 쓰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라는 것을. 이건희와 스티브 잡스 중 누굴 더 좋아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리는 일과 비슷할 것이다.

자주 경험해보았다. 점심시간, 같이 앉은 테이블에서 느끼는 일행 사이에서의 모종의 고립감. 마주 앉은 상대에게 말을 걸 필요도 없이 잽싸게 아이폰을 열어 터치스크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일은 이제 일상다반사다. 게임을 하거나 어플을 두드리거나 자신이 오늘 알게 된 새로운 어플에 대한 소개, 새로운 스마트폰 가입자에 대한 이야기, 통화품질 이야기, 케이스 이야기, 안 가지고 있다고 모르는 이야기들도 아니지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닌 듯한데 너나 할거 없이 관심을 표명하고 비교와 부러움의 시간을 공유한다. 내가 가졌을 때 저런 무리의 일부가 되는 걸 상상하는 일은 달갑지 않다. '전화기' 따위에 인간과 인간이 직접 공유할 수 있는 시간들을 빼앗기다니. 어이쿠, 내가 지금 현대 IT 문명의 선지자이신 스티브 잡스 교주가 창조한 신문물을 감히 모욕한 건가.

온라인의 다양한 이들과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전에 오프라인에서 오랜 시간 맺은 소중한 인연들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스마트인들에게 당부하건대 전화기 대신 상대방의 눈을 보고 말해달라. 어쭙잖은 전국 어플 자랑은 적당히 하고, 커뮤니케이션은 기술이 아닌 가까운 곳을 향한 관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쯤은 스마트하게 알아두자. 인생을 바꿀 확률이 높은 건 수년 전 개발된 전화기가 아니라, 앞에 앉은 사람과의 대화가 아닐까? 불매운동의 권고가 아닌 기본적인 태도와 배려에 대한 요구다. 지금 이 글도 앞사람 앉혀두고 스마트폰으로 읽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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